북한 도발에 면죄부 주면서 한국엔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트럼프, 한미 동맹보다 '美北의 밀월' 관계 과시하는 모양새
◇트럼프 "한·미 훈련 마음에 든 적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 트윗에서 "매우 친절하다"고 평가하면서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해 면죄부를 줬다. 그러면서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을 보기를 원한다"며 3차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열었다. 이는 미국 본토에 위협만 되지 않는다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나아가 내년 대선까지 김정은을 관리해야 할 파트너로 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선 김정은이 편지로 '작은 사과'를 했다며 넘어갔다.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그는 계속 "전부 단거리 미사일이었다"며 의미를 축소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한·미 연합 군사 훈련에 대한 비난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지렛대로 쓰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그는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해 "터무니없이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전날에도 기자들에게 "알다시피 나도 그것(한·미 연합 훈련)이 결코 마음에 든 적이 없다. 거기에 돈을 지불하는 게 싫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한) 비용을 돌려받아야 한다. 한국 측에도 이런 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2020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한국을 노골적으로 압박했다는 관측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동맹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접근을 하고 있다"며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독일과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이어지기 때문에 더 강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일제히 "김정은 편을 들었다"며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김정은 편을 들었다"며 "동맹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김정은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북한은 항상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해 '침략 예행연습'이라고 규탄했지만, 올해 특이한 점은 트럼프 대통령 역시 70년 된 한·미 동맹의 린치핀 역할을 해온 한·미 연합 훈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심지어 조롱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CNN방송도 "(트럼프의 발언은) 북한이 워싱턴과 서울 사이를 성공적으로 이간질하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했다.
◇한·미 동맹 이간질하는 北
사실상 미국 대선 캠페인이 시작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국내 정치적 목적이 큰 것으로 보인다. "북한 리스크를 잘 관리하고 있고 나라 밖에 쓰는 예산도 아끼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 영토를 위협하는 중대 도발을 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이고, 김정은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 대선까지 양측이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만 미·북 모두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미 연합 훈련 축소 내지 폐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공감대가 있고, 미·북이 오히려 밀월 관계를 보이는 상황이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담화에서 "한·미 훈련을 즉각 중단하거나 이에 대한 해명 없이는 남북 간 접촉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현재의 미·북 관계에서 북한이 가시적 성과를 내는 건 한·미 동맹을 흔드는 것밖에 없다"며 "김정은이 '한·미 연합 훈련 영구 중단'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한·미 관계를 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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