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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매경데스크] DJ생가서 생각해본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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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근 여름휴가 때 고 김대중(DJ) 대통령 생가에 들렀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2시간40분 걸려 도착한 신안군 하의도 DJ 생가에는 서거 10주년(8월 18일)을 앞둬서인지 찾는 사람이 많았다. 천사의 섬을 표방하는 신안군답게 도로변의 천사 조각상들이 반겨줬다. DJ 생가에 도착해 만약 DJ라면 경색된 한일관계 타개를 위해 어떤 일을 했을까를 생각해봤다.

DJ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당시는 전임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발언 때문에 한일관계가 최악이었다. 8개월을 준비한 DJ는 1998년 10월 도쿄를 방문해 일본 지도자들을 두루 만났다. 일왕을 만났을 때는 '천황'으로 부르면서 일본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 이는 DJ가 친일이라서가 아니라 무엇이 국익에 도움될 건가를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와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문'을 만들었다. 이 선언문은 한일관계의 교과서로 불린다.

오부치 총리는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고 밝혔다. DJ는 양국이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해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자고 화답했다.

DJ가 일본 국회에서 한 연설은 지금 읽어봐도 감동적이다. 그는 재일교포의 지위 개선과 권익 증진을 일본 정부에 호소했다. DJ의 연설을 들은 재일교포 중에는 눈물을 흘린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는 재일교포를 포함해 한국인이 100만명 가까이 살고 있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 맨 먼저 이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생업에 피해를 입게 된다.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은 DJ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바로 '남에게 존중받으려거든 먼저 남을 존중하고, 존경받을 행동을 하라'는 격언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한일이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확전을 중단하고 냉각기를 갖자. 확전은 두 나라를 공멸로 이끈다. 아무리 울화통이 치밀어도 일본 국민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원색적인 비난은 자제하고 냉정하게 대응하자.

둘째, 공격의 타깃을 아베 총리로 한정하자. 만약 피켓을 든다면 'NO 일본'이 아닌 'NO 아베'란 표현을 쓰자.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일본 국민 전체를 적으로 만든다. 당연히 일본에서도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날 것이며 한일은 함께 무너지게 된다. 벌써부터 재일교포와 사업·학업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가운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셋째, 양국은 마주 앉지 말고 나란히 앉아서 DJ-오부치가 했던 것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자. 전면에 한일공동파트너십 선언문을 띄워 놓고 나란히 앉아서 소리를 내서 선언문을 읽어보자. 그때의 합의정신을 음미해보면 공동이익을 위해 할 일들이 생각날 것이다. DJ-오부치가 만든 선언문은 한일 양국이 길을 잃어버렸을 때, 갈 길을 제시해주는 지도이자 나침반이다. 한일 모두에 소중한 외교적 자산이다.

넷째, DJ가 정치인이 가질 덕목으로 강조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동시에 기르자. DJ는 정치 입문 전에 사업을 하면서 먹고사는 문제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꼈다. 그런 점에서 관청 주도의 일제 불매운동이나 취업박람회 취소는 자해 행위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한국산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용노동부가 서울 코엑스에서 열려고 했던 일본 취업박람회를 취소한 것은 직무유기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정부가 취업길을 막은 것이다.

DJ 생가를 떠나오면서 그의 일본 국회 연설 두 구절이 귓가를 맴돌았다.

"한일 양국이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본은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아야 한다."

[김대영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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