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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기고] 日 화이트리스트 배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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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8월 2일 일본은 예상대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일본이 한국에 소재·부품을 수출할 때 지금까지는 3년 단위로 '일괄포괄허가'를 받으면 일주일 안에 통관 마무리가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개별허가'로 변경돼 통관 절차가 최대 90일까지 늘어나게 된다.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일본 측이 의도적으로 허가를 지연시키거나 불허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이번 조치로 우리 주력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뿐만 아니라 2차전지, 로봇, 탄소섬유 등 미래 산업도 피해가 불가피하게 됐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규제로 반도체 한 품목에서 소재 부족이 30%만 발생하더라도 국내총생산(GDP)이 2.2%나 감소할 정도로 이번 조치의 파급 효과는 가늠하기 힘들다. 정부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100대 핵심 전략 품목 육성책을 발표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의 보다 치밀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기업은 단기적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이 일본 공급사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 해결 방안을 서로 소통해야 한다. 한국이 백색국가에서 제외된다고 곧바로 개별허가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상으로는 비백색국가용 포괄허가가 가능하다. 우리 기업의 일본 공급처가 기업 자율 준수 프로그램인 '수출관리내부규정', 즉 CP(Compliance Program)를 인증받은 경우에는 자율 준수 기업으로 인정돼 일반국가용 포괄허가를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이 먼저 할 일은 일본 공급사와 소통해 그들이 CP 인증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받지 않았다면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의외로 이 제도를 모르는 일본 기업이 많다는 통계도 있기 때문이다.

공급 기업이 일본 내 자율 준수 프로그램 인증을 받지 않았다면 물품 납기일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으므로 조기에 충분한 수입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또한 1300개 내외로 존재한다고 알려진 일본 내 자율 준수 기업으로 공급처를 변경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단기적 대응책과 함께 기업은 거래처의 국내외 업체 대체 가능성, 자체 조달을 포함한 국산화 가능성과 기간, 불가능 시 대안과 함께 비상시를 대비한 긴축경영 플랜 준비, 유동성 확보 등에 힘써야 한다.

정부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먼저 기업과 소통을 통해 우리 기업의 정확한 대응 역량 파악에 힘써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세제 지원의 획기적 강화, 기초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 투입 등으로 대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소재 국산화를 위해 여러 대책이 있겠으나 화학물질 규제 개선, 특히 연구개발용 화학물질 규제 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의 경우 시장 유통 가능성이 낮아 국민 안전과는 큰 관계가 없고 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사안이므로 파격적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현재는 연구개발용 화학물질로 등록이 면제되더라도 당초 개발 신청 기간보다 실제 개발 기간이 늘어나거나 제조 수입량 또는 연구기관이 변경되는 경우 매번 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 또한 동일 화학물질이라 하더라도 다른 제품 개발에 사용되는 경우 연구 목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시 등록 면제 신청을 해야 한다.

일분일초가 급한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연구자가 화학물질 배합을 바꾸거나 다른 제품에 적용하는 등의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것이다. 연구개발용 등록 면제를 받은 물질에 대해서는 기업이 유연하게 여러 연구개발에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대체재 확보를 위한 지원도 요구된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상 등록 의무를 완화하고,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상 유해물질에 관한 안전검사 의무도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당분간 어려운 시기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고비를 기업은 부품·소재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고,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의 계기로 삼는다면 길게 봐서 우리 경제에 보약이 될 것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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