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 시민들 찾아…“실제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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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가나코(23)는 ‘평화의 소녀상’ 옆에 놓인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러곤 ‘같은 눈높이’에서 소녀상의 눈을 바라봤다. “옆에 앉아보니 실제 소녀의 모습이 보이네요. 저와 가까운 존재로 느껴져요.” 그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개막 첫날인 1일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미술관.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 기획전시장 안에 있는 높이 약 120㎝의 소녀상 옆에 놓인 의자에는 이날 많은 일본 관람객들이 앉았다 가기를 반복했다.
야마시타와 같은 젊은 여성, 그리고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 20대 남성들이 소녀상 옆 의자에 앉았다. 오키나와에 있는 예술대학을 졸업한 야마시타는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소녀상이 전시됐는지 모르고 왔다고 했다. 소녀상에 대해서는 일본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가까이서 실제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는 소녀상 옆에 “옆에 앉아보세요. 손을 잡아 주세요. 평화를 향한 생각이 넓어지기를 기도합니다”라는 글을 적어 놓고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아이치현은 이날부터 10월14일까지 ‘정(情)의 시대’라는 주제로 나고야 아이치현미술관 등에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를 개막했는데, 전시 작품 중에 평화의 소녀상이 포함돼 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아이치현 일대에서 2010년부터 3년 주기로 열리는 일본 최대 규모 국제예술 전시회다. 일본 사회의 대표적인 금기인 소녀상이 평화비까지 갖춰 완전한 모습으로 일본 공공미술관에서 전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 기획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저녁 6시까지 300명에 이르렀다. 대부분은 소녀상의 실제 모습을 처음 본다고 했다. 나고야에 있는 대학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는 시바야마 겐(22·남)은 “선 채로 소녀상을 보니 실제 소녀의 모습과 실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남성들이 앞에 서 있었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데 대만에도 소녀상이 생긴 적이 있다. 내 지인들도 안 좋게 보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는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현재(의 인상)만을 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얀색 기모노를 입은 단바라 미호(65)도 이날 소녀상을 찾았다. 그는 “소녀상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일본인으로서 죄송한 마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은 오랜 (교류의) 역사가 있다. 여러 문제를 극복해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소녀상이)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에너지가 됐으면 한다”고 조심스레 개인적인 희망을 얘기했다.
2016년 60만명의 관람객을 모은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소녀상이 전시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본 보수파들은 소녀상을 반일의 상징으로 선전하기 때문에, 우익들의 방해도 우려됐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인 쓰다 다이스케는 이날 “31일만 해도 한밤중까지 아이치현에 항의 전화 60건, 항의 이메일 90건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날 오후까지 우익들이 직접 몰려와 항의하는 일은 없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수도권인 사이타마현에 사는 한 남성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전시회장을 지키는 일을 했다. 그는 “2009년에 필리핀인을 대상으로 한 헤이트 시위가 내가 사는 곳에서 있었다. 충격이었다”며 “그때부터 우익들의 행사 방해와 헤이트 시위에 대항하는 일을 했다. 나는 전시를 기획하지는 못하지만 부담은 덜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우익들의 방해가 있을 경우 행사 주최 쪽에 알리고 상담하는 ‘제한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의 ‘작은 노력’은 행사를 주최하고 기획한 쪽에 큰 힘이 된다.
아이들은 소녀상 앞에서 스스럼이 없었다. 옆에 앉아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손도 잡아보았다. 이시이 신야(44·남)가 데리고 온 세 아이도 그랬다. 놀이터처럼 소녀상 옆에서 놀고 갔다. 이시이는 옆에서 “이 소녀는 일본한테 심한 일을 당했다”고 설명했지만,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김서경 작가는 휴대전화에서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 사진을 보여줬다. 31일 언론 및 전문가 대상 사전 공개 행사 때 온 아이로, 한 미술 작가의 딸이라고 했다. 김 작가는 “엄마가 아이에게 ‘소녀상 어깨 위에 왜 새가 앉아 있는 것 같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소녀가 외로운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며 “아이가 소녀상 옆에 앉아 소녀를 바라보며 손을 잡아주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나고야/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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