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일 부산대 교수, 저작권법 위반 고소
원작자 나상옥 작가 "표절 단정 불쾌" 반발
나 작가 "5월 정신 훼손 의도 아닌지 의심"
이 교수 "왜 광주시민 걸고 들어가나" 발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 5월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제39주년 기념식 후 희생자 조사천씨 묘역에서 유가족을 만나고 있다. 뒤로 보이는 게 최근 표절 논란에 휩싸인 5·18민중항쟁 추모탑이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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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와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게 5·18 정신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나상옥 작가)
"난 오로지 내 작품을 나 작가가 표절했다는 게 초점이다. 왜 광주시민을 걸고 들어가나."(이동일 교수)
광주 5·18민중항쟁 추모탑(이하 5·18 추모탑)을 둘러싼 표절 공방이 5·18 정신 훼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5·18 추모탑은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중앙에 있는 40m 높이의 조형물로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5·18묘역 성역화 사업'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광주시는 그해 '5·18 추모탑 조형물' 공모를 통해 조각가 나상옥(61)씨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해 사업비 15억원을 들여 1997년 5월 16일 추모탑을 세웠다. 5·18 기념식은 매년 이 추모탑 앞에서 열린다. 20여년간 광주 민주화운동을 상징해 온 이 추모탑이 갑자기 표절 논란에 휩싸인 까닭은 뭘까.
이 사건은 부산 지역 80대 노교수의 고소로 불거졌다. 부산대 미술학과 이동일(80) 명예교수는 지난달 11일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는 5·18민중항쟁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씨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나 작가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검찰은 피고소인인 나씨 주소가 있는 광주 북부경찰서에 사건을 맡겼다.
이동일 부산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10일 "5·18민중항쟁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 작가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나 작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사진은 이 교수가 만든 투시도(왼쪽)와 5·18민중항쟁 추모탑 실제 모습. [사진 이동일 부산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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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가 1995년 7월 광주시가 주관한 '5·18 추모탑 조형물' 공모에 내기 위해 부산 모 건축설계사무소 Y소장에게 건넨 탑의 투시도(설계도) 패널을 나씨가 모방했다"는 게 고소장의 골자다. 투시도는 물체를 눈에 보이는 형상 그대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앞서 그해 3월 '공동 출품'을 제안한 Y소장은 7개월 뒤인 10월 "우리 안이 낙선됐다"며 이 교수에게 투시도 패널을 돌려줬다고 한다.
이 일을 잊었던 이 교수는 "2009년 5월 매스컴을 통해 5·18 추모탑을 처음 본 순간 내가 오래전 만든 디자인과 너무나 똑같아 당시 공모에 냈던 디자인이 도용 또는 원용됐다고 의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Y소장이 이 교수의 작품을 공모에 내지 않고, 나상옥 작가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기단부 상단 꼭지 부분 좌·우측이 예각으로 절단된 점, 기단부 중간 부분이 다이아몬드(◇) 형태인 점, 기단부 기둥을 이루는 상·하 직선이 다이아몬드 형태에서 만나 곡직부를 이루는 점 등을 표절 근거로 댔다.
이 교수의 고소로 촉발된 5·18 추모탑 표절 논란으로 광주 지역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아직까지 '설마 표절을 했겠느냐'는 옹호론이 우세하지만, '만약 표절로 판명 나면 어떡하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작 원작자인 나 작가는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누구 말이 맞는지 팩트 체크하는 것 자체가 광주시민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라고 판단해서다.
나 작가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표절이라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면서도 "개인적인 일이면 성명서도 내고 반발하겠는데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는 "양쪽 핑퐁 게임 때문에 논란이 커지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가 제기한 표절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나 작가는 "(탑이) 비슷하냐, 비슷하지 않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제작)했느냐 판단해 볼 문제"라며 "이 교수가 먼저 작품을 발표했다거나 귀감이 되는 장소에 그런 탑을 세웠다거나 도록이 있다면 제가 보고 베낄 수 있는데 그런 객관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했다.
나 작가는 "(5·18 추모탑은) 당시 광주미술인공동체 조각 분과 10여 명이 모여 공동으로 만들었다"며 "이 교수는 내가 Y소장을 만났다고 하는데 굳이 부산까지 가서 건축사무소 업자를 만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40m 공간에 탑신·제단·벽면 등 부수적인 것들이 많고, 모습도 (이 교수의 작품과) 닮지 않았다"며 "그 시절 5·18 탑을 (제작)하려고 했다면 5월 정신을 알아야 하는데 이 교수가 이 정신을 아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5·18 추모탑의 형식과 내용 모두 이 교수 작품과 다르다"는 취지다.
그는 탑 기단부 중간에 있는 '계란을 손으로 감싸 쥔 모습'에 대해 "그냥 원이 아니라 당시 민주화를 위해 피땀 흘린 광주시민 정신을 소중히 간직하고 계승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5월 정신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작가 모임에서 밤샘 토론을 거쳐 나온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동일 부산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5·18민중항쟁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 작가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나 작가를 검찰에 고소했다. 사진은 이 교수가 직접 그린 투시도 원안. [사진 이동일 부산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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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교수가) 인제 와서 이렇게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게 5·18 정신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이에 이 교수는 "(나 작가가) 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지 왜 광주시민을 걸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광주시민을 모독한 일이 없다"고 발끈했다. 그는 "난 오로지 (나 작가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는 게 초점이다. 무고한 광주시민을 대상으로 고소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내가 그린) 투시도에 작품이 가진 모든 내용과 성격이 내재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본인의 투시도를 가져갔던 부산 건축설계사무소 Y소장과 통화한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Y소장에게 20여년 만에 전화해 '부산대 교수 이동일입니다' 그랬더니 '그런 사람 모른다'고 시치미를 뗐다"며 "당시 해운대 모 호텔에서 낙선 위로 밥까지 사줬는데 '그런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양측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광주시에 당시 공모에 출품된 자료 제출을 요청한 상태다. 고인석 광주 북부경찰서 수사과장은 "현재 수사 중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Y소장은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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