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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기자의 시각] 윤석열 총장과 프리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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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윤주헌 사회부 기자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설립 초기인 1968년부터 교수로 재직했다. 1992년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내고 2001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됐다. 우리나라 경제학 분야의 거목(巨木)으로 꼽힌다. 윤 명예교수의 아들은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재가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게 윤 명예교수는 책 한 권을 선물했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였다. 프리드먼은 이 책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 총장은 총장이 되기 전 사석에서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이 나를 좌파라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면서 "자유시장경제가 맞는 방향"이라고 했다.

기자는 그동안 검찰이 정권의 하명(下命)을 받고 기업 수사를 하는 것을 여러 차례 지켜봤다. 수사는 대부분 결과도 좋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포스코 수사다. 2015년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검찰은 포스코그룹에 대한 표적 수사를 벌였다. 숨겨진 비자금을 찾는다는 명목이었다. 비자금은 나오지 않았고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등 수사 대상자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롯데, 농협, KT&G, KT 등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무리한 영장 청구, 별건(別件) 수사 논란이 이어졌다. 검찰이 추구하는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 수술식 수사'는 온데간데없었다. 검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기업의 체력은 약화됐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해도 검찰 시각으로 보면 다르게 볼 수 있어서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기업도 잘못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바탕으로 한 검찰 수사는 자유시장경제를 위협하게 된다. 먼지가 나올 때까지 터는 수사도 마찬가지다.

윤 총장이 검찰 수장에 오르면서 법조계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재계(財界)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그는 검사 시절 대부분을 특별수사하면서 보낸 전형적인 '특수통'이다. 중앙지검장을 2년 동안 하면서 '적폐 수사'에 집중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수사 타깃을 기업으로 바꿀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윤 총장이 프리드먼의 생각에 동의한다던 평소 그 소신을 바탕으로 절제된 기업 수사를 하기를 기대한다. 최근 정부 발표를 보더라도 기업 심리는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미·중 무역 갈등, 일본의 경제 보복, 최저임금 인상 등 안팎으로 상황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지난 몇 년 사이 검찰이 했던 방식의 수사를 계속 고집하면 축 처진 기업 어깨에 감당할 수 없는 돌덩어리를 얹는 것과 같을 것이다.

[윤주헌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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