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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350] 전쟁과 정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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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프로이센 출신 군사 사상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사용한 정치의 연속일 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전쟁이란 무엇일까? 이스라엘 정치학자 아자 가트는 "나와 내 가족의 유전자 풀을 지키려는 진화적 본능 덕분에 인류는 여전히 서로 싸우고 전멸시키려 한다"고 분석했다.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 아닌 이기적 유전자들 사이 경쟁의 연속이라는 해석이다.

물론 인류는 더 이상 진화적 충동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동물이 아니다. 무엇보다 큰 뇌와 사회적 협업 덕분에 지구 생명체 중 유일하게 과학과 문명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나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이들을 지금 파괴하려는 감정과 더 큰 미래의 혜택을 고려하는 이성이 충돌하기 시작한 이유다. 적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노예로 만들 것인가? 상대방의 도시를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세금을 내도록 할 것인가? 전쟁의 목표가 전멸과 학살인 세상을 우리는 '야만'이라 부르지만, 전략적 승리와 정치적 이득을 위한 전쟁을 치르면 '문명'이라 부른다. 정치적 이득도 전략적 승리도 아닌 절대적 파괴만이 목표였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진정한 야만'이라 지정한 이유다.

문명의 '깊이'가 손톱 두께만도 못하다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일까? 2차 대전 이후 인류는 결심한다. 전쟁이 정치의 연속이 아닌 정치가 전쟁의 연속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개인 간 갈등을 더 이상 폭력이 아닌 사법적 절차로 해결하듯 국가 간 분쟁 역시 전쟁이 아닌 협약과 규정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그리고 아베 정권의 경제 보복. 지금 우리는 힘과 무력으로 국가 간 갈등을 해소하려는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야만의 길은 대부분 일방통행이다. 무역 전쟁과 경제 보복은 총과 탱크의 전쟁을 상상 가능하게 하고, 전쟁이 다시 정치의 연속이 된 세상은 언제든지 다시 학살과 파괴만을 위한 야만 세상으로 추락할 수 있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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