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안성수판 마하고니’ “춤사위 훌륭” vs “원작과 거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립오페라단 실험적 국내 초연 호불호 갈려 / 최소한의 형식·구도만 남긴 무대 특징 / 나머지 큰 여백은 오로지 무용으로 채워 / 원작자 특유의 ‘낯설게 하기’ 장치로 기능 / 원래 줄거리 퇴폐·혼돈 제대로 묘사 의문

현대 오페라의 고전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마하고니)’이 드디어 우리나라 무대에서도 선보였다. 배금주의의 끝을 보여주며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회와 인성을 파괴하는지 고발한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1930년작이다.

이는 지난 5월 로시니의 ‘윌리엄 텔’을 국내 초연한 국립오페라단의 야심찬 새 도전이었다. 국립오페라단은 “관객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현대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현대 오페라를 초연하는 것이야말로 국립오페라단의 책임이자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흔치 않은 브레히트 작품 초연으로 시선이 집중된 이번 공연에서 국립오페라단은 또 다른 실험을 했다. 손꼽히는 연출가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장·예술감독에게 첫 오페라 연출 및 안무를 맡긴 것. 그 결과 지난 11일부터 4일 일정으로 막 열린 국립오페라단의 마하고니는 ‘안성수판 마하고니’로 기록될 법한 작품이 됐다. 만들어진 지 90여년 된 마하고니는 워낙 인기 높은 작품이어서 자주 무대에 오른다. 1977년 독일 베를린 코믹 오페라 하우스 공연 등 수십년에 걸친 세계 유명 오페라단 공연 동영상이 여럿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이번 공연은 그 어느 것과도 다르다.

세계일보

지난 11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국립오페라단의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황금만능주의의 폐해를 신랄하게 풍자한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현대 오페라 걸작으로 이날 국내 초연됐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무엇보다 한국 첫 마하고니의 특징은 미니멀리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온통 새하얗게 꾸민 무대에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형식과 구도만 남기고 모든 걸 걷어냈다.

이로 인한 큰 여백은 온전히 무용으로 채웠다. 15명의 남녀 무용수가 쉴 틈 없이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것으로 각 장면 상황과 분위기를 만들었다. 안성수 감독은 공연해설집에서 “안무를 시작하기 전 말뫼(스웨덴 항구도시)에서 3주 동안 ‘마하고니’ 전곡 음반을 듣고 또 들었다. 어딜 가든 관광을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이 음악만 들었다. 애매한 부분을 특히 집중적으로 들었다. 그랬더니 안무를 잘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뚜렷이 보였다. 선율이나 리듬이 안무에 적합하면 춤을 넣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무용을 넣을 수 있는 데까지 꽉 채워 넣었다는 얘기다.

그 결과는 호불호가 엇갈린다. 정련된 춤사위는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기존 오페라와 너무도 다른 무대에 ‘무용이 과했다’는 느낌도 든다. 때로는 가수들과 무용수로 무대가 지나치게 비좁아졌다. 또 극 설정에서 원작은 제1, 2차 세계대전 중간인 1900년대 중반을 배경 삼았는데, 이번 공연은 ‘알 수 없는 때, 알 수 없는 곳’으로 설정됐다. 출연진은 17∼18세기 바로크 시대 의상을 입고 나오지만 시대를 알 수 없는 무대에 대사에는 자동차·전화가 등장한다.

이처럼 비워진 무대와 배경, 넘치는 무용 등은 모두 브레히트 특유의 ‘낯설게 하기’를 위한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그 자체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고 비판적 성찰을 하도록 유도하면서 삶의 즐거움이 오로지 ‘상품’으로서의 가치만을 갖는 마하고니 도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기 위한 시도다.

하지만 이처럼 단정한 미니멀리즘으로 채워진 무대가 원래 줄거리인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하는 가상의 도시 마하고니에서 벌어지는 퇴폐와 혼돈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마하고니는 “실컷 먹는 것을 잊지 말자. 사랑을 나누자. 권투를 즐기자. 실컷 술을 마시자”라며 모든 욕망에 충실하라고 끊임없이 부추긴다. 살인도 법정의 부름에 피해자가 응답할 수 없다는 이유로 면벌부를 받는 이곳에서 죽어야 하는 대죄는 ‘무전(無錢)’이다. 돈 없는 이에겐 계약으로 맺어졌던 사랑도, 알래스카 벌목공 생활 7년을 함께한 우정도 등을 돌린다. 결국 돈이 없다는 죄로 사형을 당하는 남자는 “돈으로 산 즐거움은 즐거움이 아니었고, 돈으로 산 자유는 자유가 아니었다”는 말을 남긴다.

11일 공연에선 독일 테너 미하엘 쾨니히, 메조소프라노 백재은 등이 활약했는데, 특히 소프라노 바네사 고이코엑사의 표현력이 인상적이었다. ‘앨라배마 송’과 함께 피날레 합창이 마하고니의 하이라이트인데, 이번 무대에서도 주역들과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의 장중한 합창이 빛났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