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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모든 사물에는 노래가 숨어 있다" 70년생 두 시인이 본 자연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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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 계보 잇는 문태준, 詩 쓰는 사회학자 심보선

'바람이 불면…' '그쪽의…' 등 산문집 나란히 출간

조선일보

문태준, 심보선


2000년대 시인(詩人) 그룹을 대표하는 문태준과 심보선이 나란히 산문집을 냈다. 문태준은 10년 만에 두 번째 산문집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마음의 숲)를 냈고, 심보선은 첫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문학동네)를 선보였다. 두 시인은 1970년생 동갑내기로, 1994년 함께 등단했다.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한 문태준은 김소월 시학(詩學)을 계승하는 서정파(抒情派)의 대표 시인으로 미당 문학상을 비롯해 2000년대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심보선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딴 덕에 '시를 쓰는 사회학자'로 주목받아왔고, 지난해 김종삼 문학상을 받았다. 김수영의 뒤를 이어 '현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시인'을 지향하는 지성파(知性派) 계보에 속한다.

문태준 산문집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는 자연과의 교감에 바탕을 둔 서정적 에세이다. 시인은 "생각은 계속 일어난다"며 이렇게 썼다. "숲에 새잎이 생겨나듯이,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듯이, 생각은 바람, 빗방울, 분수, 꽃, 낙엽, 눈송이, 촛불, 음(音), 분수와 같다." 그리하여 시인은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와 부드럽게 굴러가는 물의 바퀴와 물의 유연함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차게 될 것'을 꿈꾼다. 그러면 "내면에 다른 존재의 공간이 생겨나는 것을 수용하게 되고, 그 공간이 매우 새롭다는 것도 곧 알게 된다"고 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라고 책 제목을 정한 이유다.

시인은 영화관에서도 시를 발견한다. 날마다 시를 습작하는 버스 기사가 주인공인 영화 '패터슨'을 보고 나선 '이 영화를 보면서 일상에는 반복되는 것의 무료함과 새롭게 일어나는 것의 설렘이 한군데 뒤섞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 줄 평을 남겼다. '모든 사물 속에 노래가 숨어 있다'는 심정으로 사는 시인의 일상이 노래를 부르는 산문집이다.

심보선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의 화두(話頭)는 '공동체와 예술과 영혼'이다. 시인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영혼의 생산과 소비를 독점함으로써 영혼은 속물들의 유기농 식단 정도로 전락한다'고 물신(物神)의 영혼 지배를 사회학자의 어법으로 비판하더니, '인간은 어디선가 불현듯 들려오는 영혼의 희미한 모스부호 소리에 감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시인답게 말했다. '영혼 때문에 나는 시를 쓰고 시를 산다'고 한 시인은 영혼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주된 병폐를 '남성 중심의 패거리 문화'에서 찾는다. '가부장주의, 권위주의, 젠더 불평등, 연고주의 등등. 한국의 조직은 합리적 기계가 아니라 차라리 남성 중심의 패거리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한국 조직 안에는 '영혼이 없는 전문가'가 살지 않는다. 그 안에는 욕망 덩어리 패거리들이 산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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