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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화려하고 견고한 갑옷 뒤엔… 나약한 인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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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페렌켐퍼… 수백년전 갑옷 사진 찍는 獨사진가

동강국제사진제서 3점 전시 "한국 갑옷은 얼굴 가리지 않아 신기"

속이 약하면 겉이 두껍다. 이 외강내유(外剛內柔)의 법칙이 독일 사진가 클라우디아 페렌켐퍼(60)가 2010년부터 갑옷만을 촬영하는 이유다. "오스트리아 여행 중 우연히 빈 미술사박물관에서 왕족의 갑옷을 보게 됐다. 화려한 금속의 겉면을 바라보다 그 안쪽에 있었을 아주 여린 인간을 떠올렸다."

그 상상이 드레스덴·뉘른베르크 등의 박물관으로 그를 떠밀었고, 박물관 협조를 얻어 수백년 전 갑옷을 찍고 있다. 코만 기형적으로 불룩한 갑옷, 금으로 전신을 두른 갑옷, 가슴팍에 창(槍) 공격의 흔적이 남은 갑옷…. "모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를 가리는 갑옷이다. 갑옷을 입었을 때 드러나는 건 작은 구멍 너머의 눈동자뿐이다. 중요한 건 갑옷이 아니라 그 안을 상상케 하는 여지다." 강원도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에서 9월 29일까지 열리는 '2019 동강국제사진제'에 그의 갑옷 사진 3점이 전시돼 있다.

조선일보

갑옷 사진 시리즈 ‘Armor W 12-14-1’ 앞에 선 클라우디아 페렌켐퍼. /동강국제사진제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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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시리즈' 이전에 '곤충 시리즈'가 있다. 1996년부터 2009년까지 개미·나비·딱정벌레의 초상을 현미경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이 '곤충' 9점도 함께 전시됐다. "곤충이지만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내 남편은 딱정벌레 사진을 보고 '독일 정치인 헬무트 콜 같다'고 하더라." 광공업 도시(카스트로프라욱셀)에서 스무 살까지 살았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매일 황량한 공사판을 오가는 거대한 광산 기계를 보며 자랐다. 길이가 200m 넘는 그 거대한 거인들을 렌즈에 담았다. 그러다 기계 옆에서 조그맣게 움직이는 인부들로 시선이 움직였다. 마치 곤충 같았다."

기계·곤충·갑옷이라는 견고한 외면의 피사체는 모두 인간을 형상화하고 있다. "내 사진은 결국 인간의 나약함, 생존의 이야기"라고 했다. 현재 작업은 일본 사무라이 갑옷으로까지 확장했다. "몇 년 전 한국의 갑옷을 보고 싶어 서울 전쟁기념관·국립중앙박물관 등을 찾아갔다. 서양이나 일본과 달리 얼굴까지 전부 가린 갑옷은 없었다. 왜 한국의 전사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았을까?"

그는 독일 사진계 거장 베른트 베허, 힐라 베허 부부의 가르침을 따르는 '베허 학파'로 분류된다. 이번 사진제 국제주제전 역시 베허 부부가 교수를 지낸 독일 예술대학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출신 작가 12인을 다룬다.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한 클라우디아의 이번 목표는 갑옷의 해체다. "독일에서조차 모든 이들이 유명 작가인 안드레아 구르스키·칸디다 회퍼 등 이른바 '빅 5'만 거론한다. 그들 말고도 주목할 만한 작가가 있음을 보여주겠다."





[영월=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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