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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허윤희 기자의 고색창연] 2천년을 견뎌낸, 그 칠흑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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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빛깔, 옻칠展

9월까지 국립김해박물관 특별전… 고대 한반도 옻칠의 세계 재조명

조선일보

"쫙 깔렸습니다!"

1988년 1월 경남 창원시 다호리 고분군. 국립중앙박물관 조사단이 목관을 들어 올리는 순간, 함성이 터졌다. 기원전 1세기 무렵의 청동검과 칼집, 활과 화살, 부채, 붓, 그릇들이 완벽한 상태로 쏟아져 나왔다. 2000년 전 물건이라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무덤 바닥에서 샘이 솟아 늘 촉촉한 상태를 유지했고, 유물에 옻칠이 돼 있었던 덕분이다. 우리나라 옻칠의 역사를 기원전으로 끌어올린 획기적 발견이었다.

국립김해박물관 특별전 '고대의 빛깔, 옻칠'은 우리가 잘 몰랐던 옻칠의 세계를 조명한다. 창원 다호리 유적 출토품 1200여 점이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김해로 이관된 것을 계기로 마련했다. 다호리 옻칠 유물을 중심으로 광주 신창동 유적 칠기류, 무령왕릉 왕비 베개 봉황 장식, 통일신라 청동 옻칠 발걸이 등 280점을 모았다.

조선일보

왼쪽은 무령왕비 베개 봉황 장식. 검은색으로 칠한 후 정수리 깃과 목에 금박 띠를 돌렸다. 오른쪽은 통일신라 청동 옻칠 거울 뒷면 . 금과 은을 오려 붙여 꽃·동물 무늬를 장식했다. 지름 18.2㎝. /국립김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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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나무 수액을 칠한 옻칠은 동양만의 문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옻칠은 청동기 시대 여수 적량동 비파형 동검에서 확인된 옻칠 흔적. 실물이 출토된 건 삼한시대(기원전 200년~기원후 300년)부터다. 선조들은 나무뿐 아니라 금속, 천, 가죽 등 다양한 소재에 옻칠을 했다. 옻칠은 아름다운 색과 광택을 낼 뿐 아니라 뛰어난 보존 처리 효과도 지녔다. 고대 중국에선 '옻칠잔 하나가 청동잔 열 개와 견준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가치가 높았다. 장용준 학예연구실장은 "우리나라에서도 금이 사용되기 전까지 옻칠 제품이 당대 가장 귀한 물건이었다"고 했다.

옻칠이 생소한 이들도 나전칠기는 익숙할 것이다. 옻칠의 여러 기법 중 조개껍데기를 붙여 장식한 것이 나전이다. 금이나 은을 붙이는 평탈, 옻칠로 그림을 그리는 칠화도 있다. 다호리 유적은 고대 한반도 옻칠 문화를 보여주는 보물 창고. 한반도 칠기가 바탕칠 없이 목기 표면에 곧바로 옻칠을 한 반면, 낙랑 유적에서 출토된 중국제 칠기류는 직물을 먼저 입히고 옻칠을 여러 번 한 것으로 드러나 삼한시대부터 독자적 옻칠 문화가 형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엄선한 옻칠 걸작 8점을 방 하나에 따로 모았다. 한 점 한 점 칠흑 같은 윤기가 흐른다. 무령왕비 베개를 장식한 봉황 두 마리는 검은색으로 칠한 후 정수리 깃과 목에 금박 띠를 돌려 화사하다. 둥근 청동에 옻칠한 뒤 금과 은을 오려 꽃·동물 무늬로 장식한 통일신라 거울은 정교하고 아름답다. 일상용품부터 제사용품, 전쟁 무기까지 2000년 동안 우리 삶에 뿌리내린 옻칠의 재발견이다. 9월 29일까지.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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