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9 (화)

靑 1월엔 징용기금 반대, G20 닥치자 입장 바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당초엔 "비상식적案" 공개 반박, 외교부 "지금은 상황 달라졌다"

日 "한국이 청구권 협정 위반… 제3국 의뢰해 중재위 만들자"

외교부가 19일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일본에 '한·일 양국 기업의 피해자 지원'안을 제안했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 외교부의 제안은 "사법부의 판단이라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며 '피해자 기금'안을 반대해왔던 청와대와 조율을 거친 것이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급히 꺼낸 제안이었지만, 일본은 "한국이 청구권협정을 위반했다"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징용 문제가 결렬되면서 한·일 정상회담은 정식 회담 대신 약식으로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의 제안은 소송 당사자인 일본 기업,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수혜를 본 국내 기업들의 출연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선 포스코·KT, 일본에선 신일철주금·미쓰비시중공업 등이 대상 기업이다. 한·일 기업이 참여하는 '피해자 기금'안은 작년 10월 말 강제징용 판결 직후부터 외교 당국이 검토해왔다. 하지만 올 1월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며 공개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당시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했고, 이후 외교부도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말만 반복해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폐기된 안이 부활했다는 지적에 관해 "관계 부처 간 충분한 협의를 했다. 당시와 지금 상황은 다르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일부 징용 피해자,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타협안'으로 한발 물러섰고, 외교부가 이를 일본에 공식 제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일보

작년 대법서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와 가족들 - 외교부가 19일 한국과 일본 기업의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일본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가족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며 만세를 외치는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에서 "거부"라는 말이 나오기까지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오후 4시 한·일 기업의 피해자 지원안에 관한 외교부 당국자의 언론 브리핑이 시작되고, 4시 11분 외교부 홈페이지에 관련 보도자료가 게시된 지 정확히 30분 만에 외무성 간부가 "(한국 측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는 일본 교도통신 보도가 전해졌다. 오스가 다케시 일본 외무성 보도관은 "한국의 국제법 위반 상황을 시정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 해결책도 안 된다"며 "한국 측에도 (사전에)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일본 측과 충분한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린 것"이라고 했다. 대일(對日) 외교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정당성 확보 차원이란 분석이다.

다만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은 고맙게 생각한다"며 여지를 열어뒀다. 정부 관계자도 "한·일 정상회담과는 별개로 이 문제는 계속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G20 앞두고 뒤늦게 발동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한국의 의도적 '무시 전략'에 단단히 화가 나 있다"며 "G20 계기 한·일 정상회담 개최도 이 문제와 얽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그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외교 경로를 통한 협의 ▲양국 지명 중재위 구성 ▲제3국을 통한 중재위 구성 등을 순차적으로 요구해 왔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한국에 중재위 구성에 응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가 청구권 협정상 의무를 다하지 않아 유감"이라며 3국을 통한 중재위 구성을 제안했다.

G20 계기 한·일 정상회담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날 일본 산케이신문은 "(한·일 정상의 만남은) 인사를 하거나 서서 대화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전했다. '풀 어사이드(pull-aside)' 방식의 약식 회담 수준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상회담과 강제징용 문제는 별개지만, 현재 양국 상황이 공식 양자 회담을 열긴 어려운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이 적극 나서지 않으면 우리 정부도 회담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G20 주최국인 일본은 전체 참여국과 양자 회담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고, 우리 정부도 미국·중국 등과 머리를 맞대야 할 더 시급한 외교적 과제가 있다는 취지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정부가 G20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 무리수를 둔 상황인데, 발동이 너무 늦게 걸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