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인 폭언·갑질에 사직…실신하거나 공황장애 시달린 직원도”
‘깐풍기 갑질’ 의혹(<한겨레> 5월28일치 10면 ‘먹다남은 깐풍기 어쨌는지 모른다고…주몽골 대사의 갑질’)이 제기된 정재남 주 몽골 한국대사의 부임 이후, 지속된 폭언과 퇴사 종용 등으로 대사관을 그만두거나 극심한 스트레스, 공황장애에 시달린 직원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한국노총 전국노동평등노동조합 재외공관 행정직 지부에 따르면, 직원 ㄱ씨는 지난 5월2일 정 대사한테 40분 가까이 심하게 질책을 당했다. 오는 7월초로 예정된 대사관 주최 학술회의와 관련해 4월30일까지 논문집 편집 지침을 확정하고, 정 대사의 최종 확인을 받은 뒤 발표자들에게 이를 보내기로 했는데 이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논문집 편집은 원래 ㄱ씨의 상관인 ㄴ씨 소관이었다. ㄱ씨는 그와 상관없는 기획·행정·예산 등을 맡았지만, 정 대사는 모든 상황을 ㄱ씨가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ㄱ씨는 4월30일 오후 정 대사의 확인을 받으려고 편집 지침안을 한글 파일과 사진 파일로 만들어 정 대사의 전자우편과 텔레그램으로 보냈다. 사진 파일을 별도로 보낸 건, 혹시 한글 파일이 안 열리더라도 내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하려는 조치였다. 당시는 때마침 정 대사가 고비 사막 쪽에 출장을 간 상황이어서 대면보고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전자우편·텔레그램으로 사진 파일까지 보냈는데…
그런데 정 대사한테서는 답이 없었다. 텔레그램에 사진 파일까지 확인한 것으로 표시되는데도 정 대사의 답이 없자, ㄱ씨는 이튿날인 5월1일 ‘편집 지침안 보낸 것을 확인하셨느냐’는 내용의 메시지도 보냈다. 역시 답은 없었다. 이러는 사이 편집 지침안이 일부 수정됐고, 담당자인 ㄴ씨가 이 내용을 정 대사한테 직접 보고하겠다고 해 ㄱ씨는 더 확인을 하지 않았다. 정 대사의 최종 확인이 없었으니 발표자들한테도 편집 지침을 보내지 못했다.
사달은 정 대사가 출장에서 돌아와 출근한 5월2일에 벌어졌다. 정 대사는 ㄱ씨한테 “4월30일까지 편집 지침을 보내기로 했는데, 그보다 늦어지는 상황이 생겼으면 그렇다고 보고를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고 한다. ㄱ씨는 “전자우편과 텔레그램으로 내용을 전달했고, 일이 늦어진 상황은 담당자인 ㄴ씨가 보고하겠다고 해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러자 정 대사는 “인터넷이 안 되는 지방에 있었던 걸 알지 않느냐. 내가 (ㄱ씨가 보낸 전자우편과 텔레그램을 확인하는) 이 일만 하느냐!”며 ㄱ씨를 몰아세웠다. 또 “ㄴ씨 대신 직접 보고하라고 했는데 왜 지시를 무시하느냐. 대사는 허수아비 껍데기냐. ㄴ씨한테만 잘 보이면 여기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냐. 8월에 ㄴ씨가 한국에 돌아갈 때 거취를 같이 하라”고 압박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지시를 왜 어겼는지 경위서를 제출하라며, 그 안에 써넣을 내용까지 불러줬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원 입원까지
결국 이날 오후 ㄱ씨는 실신해 병원 응급실에서 신경안정제까지 맞았다. 이튿날 찾아간 의사는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라며 ㄱ씨에게 휴가를 권했다. 그 길로 ㄱ씨는 병가를 내고 한국에 돌아와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노조는 ㄱ씨가 극도의 스트레스와 우울감, 불안 증세 등을 호소해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ㄱ씨가 입원까지 하게 된 건, 정 대사의 거듭된 압박 때문이다. ㄱ씨는 지난해 3월 외교부장관으로부터 표창장도 받는 등 성실함과 업무 성과를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정 대사 부임 이후 ㄱ씨가 경위서 제출을 요구받은 것만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2~3월엔 과중한 업무로 ㄱ씨의 시간외 근무가 112시간 이상이었다. 그런데 토요일인 3월9일 밤 10시께 정 대사가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한 채 월요일에 출근하자 “ㄱ씨는 워킹데이, 워킹아우어에만 일하는 사람이냐”며 경위서를 요구했다. 대사관 소속 행정직원들의 경우 경위서를 세 차례 쓰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고를 할 수 있다. 노조 쪽은 “재외 공관장들이 지시 불이행을 이유로 경위서를 작성하게 하고 해고를 강요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엔 정 대사의 외부 강연 원고를 전자우편으로 전달했는데, 출력한 문서를 주지 않았다며 “일에 자신 없고 능력 없으면 적성에 맞는 곳을 찾아가라. 당신 말고도 여기 올 사람 많다”는 폭언을 하기도 했다고 노조는 전했다. 정 대사의 이런 ‘갑질’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져, 직원 다수가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공황장애가 심각해져 지난해 말 한국으로 돌아온 직원도 있을 정도다.
공관 요리사에게 음식·식재료 요구 의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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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정 대사가 메뉴 평가를 이유로 공관 요리사 ㄷ씨에게 오찬이나 만찬 행사에 제공된 음식을 반드시 사저에 보내라고 지시했다는 폭로도 했다. 주 몽골 대사관은 1층을 공관, 2층을 대사 가족 사저로 이용한다고 한다. ㄷ씨는 별도로 음식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지시를 받지 않는 한 나물류는 통으로, 국은 냄비째 전달했다고 한다. 올해 3월 들어선 행사에 제공된 음식 한 세트 전체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음식을 가져다달라는 요구는 정 대사의 아내도 거들었다. 노조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정 대사의 아내는 “오이지 넉넉하게 무쳐주세요”라거나, “국수 2인분 부탁드린다”, “그라탕, 떡볶이” 등의 음식을 가져달라고 수시로 요구했다. 밤이나 대추 같은, 공관에 보관된 식재료를 가져다달라거나 두부, 콩나물, 순두부 같은 식재료 주문을 요구하기도 했다. 공관 요리사에게 사적인 음식을 부탁하려면 별도의 사례금을 지급해야 하고, 식재료 구입 역시 사적인 용도이므로 대사 개인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노조 쪽은 “원칙적으로 공관의 예산으로 구입한 식재료를 사저에서 개인이 먹을 식사로 사용하면 안된다. 음식과 식재료 요구는 공관비 횡령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ㄷ씨는 계약 만료를 두 달 앞둔 지난 3월말 대사관을 그만두고 귀국했다.
정 대사 “원칙과 규정에 맞게 처리…조직적인 음해”
노조의 의혹 제기에 정 대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ㄱ씨는 외교관과 일반 행정직원의 중간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업무의 주요 내용이 교육·문화다. 그것과 관련한 업무를 포괄적으로, 더 책임감 있게 하는 게 맞다”며 “하지만 주말·야간근무를 강요하거나 지시한 적은 없다. 업무 태도를 지적한 것을 두고 사직을 강요했다고 하는 건 침소봉대”라고 반박했다.
음식·식재료 요구와 관련한 문제제기에는 “부임 직후 아내가 올 때까지 한 달 정도를 제외하면 한 번도 사적으로 음식을 차리라고 한 적이 없고, 그 한 달 동안도 자비로 요리사에게 300달러를 지급했다. 그런 의혹을 사기 싫어서 일부러 식재료나 음식을 (공관 요리사에게) 추가로 요청하지 않는다”고 부인하면서 “그만둔 요리사는 새 직장에 취업이 됐다며 갑자기 사직서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5월 부임하면서 원칙과 규정, 합리적인 상식에 맞춰서 일을 하자는 원칙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했다. 그에 따라 이전 관행과 달리 무단결근, 잦은 지각, 지시 불이행을 한 직원은 기강 확립 차원에서 경고나 징계 조치를 했는데, 그런 분위기에 반발하는 직원들이 조직적인 음해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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