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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매경데스크] 무역전쟁 조장하는 미·중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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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국과 중국이 한판 세게 붙었다. 한때 서로가 공생의 길을 찾을 것이란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 나라는 연일 관세폭탄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을 향해 독설을 내뱉고 있다. 미국은 중국 핵심 기업인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까지 명령했고, 중국은 자신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팔아치우며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마주 보고 달리는 두 대의 자동차처럼 서로가 경제적으로 공멸하는 '치킨게임' 양상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지구촌의 수많은 나라가 함께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누가 봐도 결론이 뻔한 무역전쟁이 해법을 찾지 못하고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경제 현상인 무역에 정치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양국 정치 상황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 정치가 무역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무역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칼을 겨눴지만 그의 시선은 미국 내 지지층을 향하고 있다. 칼을 겨눈 곳과 시선이 가는 곳이 다르다. 국익을 위한 무역협상을 역설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머릿속은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를 그리고 있다. 국가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적어도 2020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는 그렇다. 무역 문제에서 중국과의 긴장을 조성할수록 지지층은 결집하고 선거에 도움이 된다. 섣부른 합의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중국과의 대립과 협상은 선거에 도움이 될 때만 의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점을 십분 이용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은 올해 건국 70주년, 개혁개방 40주년, 톈안먼 민주화시위 30주년 등 역사적 사건이 겹치는 해를 맞았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철폐해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만들었다. 내부의 민주화 요구를 무마시키고 시 주석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공산당 엘리트를 주축으로 한 핵심 지지층의 결집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 반기를 든 것도 내부 공산당 엘리트의 목소리가 커진 결과다. 무역협상 과정에서 양국 합의사항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미국에 대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내정간섭이라며 강력히 반발하자 놀란 시 주석이 법제화 불가를 내세우며 재협상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협상의 판을 깨더라도 내부 결속을 다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최우선시하는 것과 시 주석이 '중국 애국주의'를 앞세우는 것은 무역을 담보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국제무역론의 대가인 미국 경제학자 진 그로스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정치인들을 '보호무역을 판매하는 상인'에 비유했다. 국가 경제적으로는 불리해도 정치인들의 이해타산에 맞으면 얼마든지 보호무역 정책을 펼 수 있다는 것을 모델을 통해 보여줬다. 예를 들면 미국 수입업자들이 이익집단을 구성해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하고 로비를 받은 정치인들은 로비 정도에 따라 수입 관세를 책정한다. 정치인들이 로비를 받고 보호무역 정책을 파는 것이다. 선거 때는 이익집단 로비보다는 지지층의 표가 더 중요해진다. 이익집단의 행동과 성격에는 차이가 있어도 보호무역을 판매하는 정치인의 행태는 선진국과 후진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가 별반 다르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이익집단은 활성화되고 정치인의 보호무역 판매에 대한 유혹은 더 커진다. 국가 이익을 앞세우면서 속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정치인이 득세하면 보호무역은 급속히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양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내년 미국 대선 때까지는 긴장감이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에서 정치논리가 기승을 부리며 무역을 정치에 이용하는 행태도 정도를 더해 갈 것이다. 무역전쟁이 심화되면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 정치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도 커졌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끊임없이 대립하면서 다른 나라들을 줄 세우기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정치적인 동맹국 미국과 최대 수출국인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정치논리로 움직이는 강대국 상황을 이해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노련한 외교와 정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노영우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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