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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아직 끝나지 않은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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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바다에 잠수함이 가라앉았다. 산 사람들은 벽을 두드렸다. 어둠의 심연에 쇳소리만 울렸다. 배는 결국 구조되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감수성 깊은 아이가 있었다. 훗날 이 아이는 파시즘에 저항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 평균 생존기간 3개월인 '지옥'에서 11개월이나 버텨 살아남았다. 이탈리아 토리노로 귀향한 그는 화학자가 됐지만 비극을 증언한 문장으로 더 이름을 떨쳤다.

프리모 레비가 세계와 대면했던 '마지막 인터뷰'가 출판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로 출간됐다. 연두색으로 감싼 레비의 흑백 사진 표지가 비극의 영정(影幀) 같다. 문학평론가 조반니 테시오가 레비와 나눈 구술 인터뷰인데, 테시오는 레비 자서전을 집필하려던 목적이었다. 세 번째 만남 직후 레비는 스스로 이승을 등진다. 테시오는 썼다. "나는 느닷없이 레비에게서 어떤 균열을 감지했다."

슬픔과 아픔을 함께 움켜쥐는 두 인물 간 건조하고도 뜨거운 대화를 읽다 보면 직접 레비에게 질문하고 싶어진다. 생지옥의 생존자인 까닭인지, 레비에게는 지옥이 더 친숙했다. 단테의 '신곡'을 두고 레비는 '천국'에는 끌리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연옥'은 지옥만큼 좋아하지 않았고 '천국'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옥'은 쉽습니다. 그것은 총천연색입니다. '천국'은 의욕을 사라지게 합니다."

서서히 몰락하는 내면의 풍경을 언뜻 내비치기도 한다. "주변 세계가 무너지는 게 보이십니까"란 테시오의 질문에 레비는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그래요. 이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몹시 고통스럽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요. 저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어떤 힘을 가져야만 합니다. 아우슈비츠는 굉장한 전쟁터이니까요." 저 무너진 세계가 우리의 땅이기도 하다.

레비의 명저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해선 자기 분리를 시도한다. 생의 길과 책의 길은 갈린다는 것이다. 레비는 중얼거린다. "저는 책을 썼고 그 후 책은 제 갈 길로 도약을 하는 겁니다. 미궁처럼 복잡하게 뒤얽힌 여정을 따라가지요. '이것이 인간인가'는 제가 지금도 여전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완의 자서전은 오직 슬픔을 완성시킨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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