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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누가 게임을 시간낭비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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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임의 이론-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
이동연·임태훈·천정환 등 지음/문화과학사·2만원

최근 게임을 문화연구와 인문학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국내 연구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게임 셧다운제’, ‘게임중독방지법’ 등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정책이 추진되자 학계에서 대항 담론을 적극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이 한국의 콘텐츠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은 애초 모순된 것이기도 했다. <게임의 이론>은 이런 맥락에서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게임의 문화적, 교육적, 미학적 가치와 게임을 통한 문화적 취향의 형성 등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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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단순히 비디오게임으로 한정하지 않고 놀이의 일종으로 본다면 시야는 넓혀진다. 고대 그리스의 기록이나 원시생활을 유지하는 종족의 문화를 살펴봐도 놀이는 모든 문화에 존재한다.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를 부차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 “문화 자체가 놀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해 최초로 놀이를 학문적으로 접근한 학자로 기록된다. 바둑, 장기, 체스 등도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그 지적 가치를 인정받고 하나의 예술로까지 격상됐지만, 본질적으로 놀이이자 게임이란 점은 다르지 않다. 놀이를 자신의 철학의 중심 개념 중 하나로 삼았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위대한 과제를 대하는 방법으로 놀이보다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위대함의 징표이자 본질적인 전제조건이다.”

박근서 대구 가톨릭대학 교수(언론광고학부)는 탈주라는 현대철학의 개념으로 게임을 분석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서 탈주는 고정된 사고의 틀이나 규범적인 제약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출하고 벗어나려는 기획과 실천을 말한다. 그가 보기에 게임의 탈규범 계기는 ‘모래상자’ 게임에서 많이 드러난다. ‘마인크래프트’처럼 규칙이나 제약이 매우 약해 게이머가 자유롭게 뭔가를 할 수 있는 게임을 ‘자유도’가 높다고 하며, 그중에서도 게임의 목표를 게이머가 스스로 설정할 수 있게 한 게임을 ‘모래상자’ 게임이라고 부른다. 게임이 발전하면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이전엔 <심시티>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이 대부분이었던 ‘모래상자’ 게임이 모든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을 통해 게이머들 간에 네트워킹이 이뤄지면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변화다. <리니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 메인 퀘스트와 스토리는 부가적 요소가 되고, 여러 게이머가 연결돼 예상치 못한 사건과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2000년대에 <리니지 2>에서 있었던 ‘바츠 해방 전쟁’은 이런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게임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이 전쟁은 ‘바츠’ 서버를 점령하고 상점 거래 물품에 매기는 세금을 일방적으로 인상한 디케이(DK)혈맹에 대항해 군소혈맹들의 연합인 바츠해방군이 일으킨 전쟁을 말한다. 현실에서는 전복하기 어려운 거대조직에 대항해 승리했던 이 전쟁엔 연인원 20만명이 참여하고, 관련 논문까지 나온 바 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술의 발전으로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점점 흐려지고, 영화·웹툰 등 다양한 장르와 게임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이때, 게임 문화연구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게임의 이론>은 게임회사 넥슨의 지원으로 출간되었고, 곧이어 <게임의 미래>, <한국게임문화사>도 나올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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