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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고딕 성당 건축에 구현된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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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

⑧ 중세의 성당과 신체

성당 건축에 적용된 상징이 인간 신체만은 아니었다. 성당 건축에 구현된 십자가의 형상은 스스로 인간이 되어 그 위에 못 박힌 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당 건물은 상징적으로 신의 몸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체는 중세 기독교의 세계관에서 질서를 나타내기 위한 메타포로 쓰였다. 인간의 몸 자체가 하나의 질서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우주와 세계의 질서 전체가 몸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표현되었다.” 이것이 지난 글의 핵심이었다. 필자는 이 간단한 생각이 중세에 거대한 건축의 기획들로 옮겨졌다고 이야기하였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건축의 기획에 구현된 신체의 메타포, 또는 신체의 메타포의 건축적 구현, 곧 중세의 고딕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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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그림을 보자(그림 1). 이것은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 마르티니의 <건축론>에 등장하는 삽화 중 하나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두 스케치는 일반적인 성당의 평면도이다. 맨 오른쪽 그림의 붉은 점들은 기둥을 나타내며, 가운데 그림은 각 부분의 분할을 표시한다. 주목할 것은 성당의 평면도에 사람의 이미지를 겹쳐놓은 맨 왼쪽 그림이다. 중세의 상징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이미지는 수수께끼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가 완벽한 질서의 메타포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 이미지는 쉽게 읽힐 것이다. 성당 건물은 그 자체로 완전한 질서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이 이미지의 의미이다.

성당 건축의 기하학적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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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세계관에서 완전한 질서란 종종 기하학적 균형을 의미하였다.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13세기 성서의 표지에 등장하는 삽화는 이러한 생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그림 2). 이 그림은 신의 세계 창조를 묘사한다. 자세히 보면 신의 눈과 신이 왼손에 들고 있는 지구의 중심이 콤파스의 긴 다리를 통해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은 신체에서 비전 혹은 상상과 직접 관련된 기관이다. 신의 눈과 지구의 중심 간의 일치는 곧 신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 이 세상을 창조하고 질서를 부여했음을 의미한다. 그 둘을 이어주는 것이 콤파스라는 것은 그 질서의 핵심에 기하학적 정합성과 균형이 있다는 생각과 관련되어 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소우주로서의 인간의 신체가 기하학적 균형을 가장 잘 표현한다는 생각은 이러한 사고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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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성당의 평면도를 인간의 신체와 겹쳐놓은 프란체스코의 그림은 성당 건축물이 기하학적 균형을 구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실제로 중세의 몇몇 성당은 이러한 생각을 우직하게 실행에 옮겨서, 교회 건물 각 부분의 크기를 정하는 데 정말로 기하학적인 비율을 적용하였다. 프랑스의 트루아에 있는 성당이 그 예이다(그림 3). 성당 건축을 전혀 모르는 대부분의 독자를 위해 성당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보통 사용하는 신랑이니 익랑이니 내진이니 하는 용어는 접어두고, 설명에 필요한 몇개의 선을 그어두었다. 우선 가로와 세로로 각각 뻗어 있는 두개의 붉은 선에 주목하자. 두 선은 정확히 십자를 그리며 교차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상징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좌우로 뻗은 선의 길이는 실제 성당에서 161.8피트이며, 위에서 아래로 뻗은 선의 길이는 261.8피트이다. 이 숫자들이 의미 없어 보이는 독자들은 1.618이 중세의 지식에서 황금률(황금률은 인간의 신체를 규정하는 정확한 비례라고 여겨졌다. 1.618은 배꼽에서 발끝까지의 길이를 머리에서 배꼽까지의 길이로 나누거나 한쪽 팔과 몸통의 너비를 더한 값을 남은 한팔의 길이로 나눌 때 나타나는 수치이다)에 해당되는 숫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좌우로 뻗은 선의 길이인 161.8피트는 바로 이 황금률에 100을 곱한 숫자이다. 여기에 다시 1.618을 곱해보라. 261.7924, 대략 261.8이 나올 것이다. 곧 위에서 아래로 뻗은 선의 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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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성당 건축에 적용된 상징이 인간 신체만은 아니었다. 성당 건축에 구현된 십자가의 형상은 스스로 인간이 되어 그 위에 못 박힌 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당 건물은 상징적으로 신의 몸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문제를 하나 내보겠다. 다음은 유명한 밀라노 대성당의 평면도이다(그림 4). 다른 것은 생략하고 여기서 점으로 표시된 기둥의 수를 세어보라고 부탁한다. 정확히 세어본 독자들은 52라는 숫자를 말할 것이다. 그런데 왜 52인가? 답이 떠오르는가? 지난 글에서 세계와 우주의 질서 자체를 신의 몸으로 보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한 우주의 질서에는 계절의 변화나 열두달의 변화, 낮과 밤의 교대 등이 포함된다. 이제 문제로 돌아가서, 앞서 기둥의 숫자인 52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자. 이쯤에서 몇몇 독자는 답을 짐작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 7을 곱하자. 364라는 숫자가 얻어진다. 감이 오지 않는가? 7은 월화수목금토일, 즉 일주일의 날의 수이고, 364는 1년의 전체 일수인 365에서 1이 빠진 숫자이다. 다시 말한다면 52는 365라는 1년의 날의 수를 7로 나눈 숫자, 즉 1년의 주일 수이다.

성당에 구현된 우주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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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당에 천궁도나 천문시계 따위가 배치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나오는 <셜록 홈즈> 2편 앞부분에서 폭파되는 성당이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이다)에는 거대한 천문시계가 있다(그림 5). 현재 시계는 1348년에서 1352년 사이에 세워진 첫번째 시계와 1574년 세워진 두번째 시계에 이어 1842년에 설치된 세번째 시계이다. 중세 기독교의 맥락에서 시계는 그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삶의 종말과 신에 의한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으므로 세속의 쾌락을 좇지 말고 덕을 함양하라는 경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시계는 일, 월, 달, 계절의 규칙적 교대라는 우주적 질서를 상징하기도 하였다.

중세 성당에 아로새겨진 상징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다음 글에 또 다룬다. 오늘은 성당의 공간 분할과 방위에 대한 이야기 하나만 하고 끝을 맺겠다. 지난 글에서 엡스토르프 지도를 설명하면서 중세에 천국은 동쪽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동쪽을 위로 배치했다고 이야기했다. 동쪽을 위로 올려세움으로써 천국의 방향이 지도에서 신의 머리가 놓인 방향과 일치하게 된다. 우주와 세계를 신의 몸에 비유할 때 천국에 해당되는 신체의 부분은 머리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배치는 당연하다. 성당의 공간도 같은 상징체계를 따른다. 교회에서 십자가가 교차하는 곳을 중심으로 위쪽 구역, 앞서 프란체스코의 그림에서 머리로 표시된 부분은 원칙적으로 동쪽을 향해 배치된다. 이곳은 상징적으로 또한 천국, 혹은 천상의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천국에서는 항상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따라서 신의 창조와 구원의 신비를 노래하는 성가대는 이곳에 배치된다.

중세의 상징체계에서 같은 신의 신체라도 아래쪽은 좀 더 물질계와 가깝고, 그래서 좀 더 격이 낮다고 여겨졌다. 머리는 판단하고 이해하는 고급의 지성 활동과 관련되어 있지만, 신체의 아랫부분은 생물학적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기능과 더 관계가 깊다는 고대 이래의 상상력도 여기에 녹아들어 있다. 따라서 프란체스코의 그림에서 동그라미가 그려진 가슴 아래부터 발까지 이어지는 부분은 일반 신도들에게 할당된 구역이었다. 그래서 군주나 고위 귀족이라 해도 함부로 이곳을 벗어나 신의 머리에 해당되는 구역에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오늘은 중세 성당 건축에 구현된 상징체계에 대해 중요한 것 몇가지를 추려 이야기하였다. 독자들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면 필자로서 행복하겠다. 다음 글에서도 성당에 구현된 상징을 좀 더 다뤄보려 한다.

글을 마무리한 4월16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탔다. 돌로 된 벽과 기둥, 장미창에서 지나간 시대의 삶과 이야기를 읽어왔던 한 연구자로서 애석하다. 그러나 그전에도 그랬듯이 성당은 다시 세워질 것이다. 그래서 희망은 있다. 2014년 같은 날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아이들, 여동생을 먼저 올려보내고 자신은 따라 올라가지 못한 채 아버지와 뒤에 남은 어린 오빠, 그리고 선생이라는 이름에 진정 부끄럽지 않았던 이들이 바다에서 스러졌다. 기억 속에 누군가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들을 애도한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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