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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 대안 없는 반대…세계 민주주의의 위기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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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에 대한 반발로 촉발된 브렉시트…거듭되는 반대 부딪히며 표류

서구 민주주의, 이익 대변 아닌 특정 정당 견제 위해 ‘경쟁 정당’ 지지하는 형태로 변질

전문가 “정치권 당파주의ㆍ비타협성 부추겨…민주주의의 위기”

헤럴드경제

브렉시트 찬성파와 반대파가 영국 의회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거듭 정치권과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며 여전히 대안없이 표류하고 있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비타협적이고 극단주의에 치닫고 있는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늘날 유럽과 미국 등 서구권의 민주주의는 과거 유권자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당파를 지지하는 형태에서 오로지 특정 권력ㆍ 정당을 반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쟁 정당’을 지지하는 형태로 재정의되고 있으며, 브렉시트를 둘러싼 혼란 역시 오로지 ‘반대를 위한 반대의 결과물’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변질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형태가 중도파의 분열과 협치주의의 상실을 야기하고, 결과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성을 고조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늘날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내 민심은 ‘불신’과 ‘반대’를 기반으로하는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영국 유권자들은 어떠한 브렉시트 대안을 지지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을 못하지만, 무엇에 ‘반대’하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메이 총리의 합의안, 혹은 노딜 브렉시트 등 명확한 대답을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브렉시트가 약 3년 여동안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당초 확실한 대안도 없던 브렉시트가 국민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영국에 확산되고 있던 유럽연합(EU)에 대한 강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이후 공을 넘겨받은 영국 정부와 의회도 거듭 ‘반대’의 목소리만 높이며 EU 합의안에 대한 타협을 거부했다. 결국 대안없이 시작된 브렉시트는 올 들어서만 세 번의 합의안 승인투표 부결과 두 번의 의향투표 부결을 겪으며 여전히 표류 중이다.

헤럴드경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3차 투표가 진행된 지난 29일(현지시간), 브렉시트 시위대가 런던 의회 밖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EPA]


브렉시트를 둘러싼 혼란은 유럽과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의 단편일 뿐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민주주의의 정의는 ‘현상에 대한 반대’, ‘기득권 세력 혹은 당적 경쟁자에 대한 반대’로 재정의되고 있다.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발로 시작해 마크롱 정부 퇴진운동으로까지 번졌던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가 대표적이다. 유권자들은 더욱 ‘반대’를 위해 조직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치권의 당파주의와 비타협성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NYT는 “유럽 전역에서 강경 대중들이 득세하면서 주류 정당들은 분열되고, 중도 성향 지도자들의 힘은 약해지고 있다“면서 “미국 정계 역시 당파 싸움이 전면전으로 흘러가면서 협치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유권자의 불신에 기반을 둔 포퓰리즘적 정당의 등장은 이른바 ‘부정적 당파주의’에 더욱 불을 붙였다. 정치학자 릴리아나 메이슨은 “이는 반대자들에게 더 큰 편견을 갖게 하고, 유권자들의 분노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반대를 위한 정치’가 확산된 주요 원인은 경제적, 사회적, 인구학적 변화로 인한 불평등의 증가다.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고,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포퓰리즘적 반체제 정치에 대한 지지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멜버른 대학의 로비르토 스테판 포아 교수와 독일의 정치학자 야스차 무크의 연구 역시 불평등이 증가할수록 정부가 민주적으로 작동할 것이란 국민적 믿음이 감소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불신과 정치적 혼란이 해소되지 않는 한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는 “기득권 세력이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현대 민주주의는 21세기 들어 새로운 체제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면서 “세계의 정치권은 향후 큰 도전을 맞게 될 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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