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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父는 죽고, 친모와 결혼하고” 재앙같은 예언…당사자 아들의 기구한 사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오이디푸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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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편 130. 오이디푸스]

“아버지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 충격 신탁

그 운명 피하려고 했지만…돌고 돌아 결국

스핑크스 잡은 그 영웅의 정체, 알고 보니?

[신화편 130. 오이디푸스]
“아버지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 충격 신탁
그 운명 피하려고 했지만…돌고 돌아 결국
스핑크스 잡은 그 영웅의 정체, 알고 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를 〈후암동 미술관〉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보듯 감상하세요. 처음부터 정주행하셔도 좋고, 시즌별로 나눠 봐도 좋고, 각 이야기를 단편처럼 읽으셔도 좋습니다. 걸출한 예술가와 풍부한 예술작품으로 몰입을 돕겠습니다. 각 기사는 여러 참고 문헌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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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 ◆
헤럴드경제

귀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일부 확대), 1864, 캔버스에 유채, 206.4x104.8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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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일부 확대), 1864, 캔버스에 유채, 206.4x104.8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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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
“너는 곧 아들을 얻으리라.”

테베의 라이오스 왕은 델포이 신전 여사제가 건넨 신탁을 듣고 구긴 얼굴을 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오랜 세월 자식이 태어나지 않아 걱정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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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콜리어, 델포이 신전 여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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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라이오스 왕이 몸을 숙이고 있을 때, 여사제는 다음 문장을 덧붙였다. “너는 그 아들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다. 또, 네 아내가 그 아들과 결혼할 것이다.” 라이오스 왕은 이 재앙 같은 말에 곧장 굳어버렸다. “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들은 그대로다. 그리고…. 신께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라이오스 왕은 눈을 부릅 뜬 여사제 앞에서 비틀거렸다. 기쁨은 썰물처럼 물러가고, 공포만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라이오스 왕은 문득 옛일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가 평생 숨기고 싶은 시절이었다.

지금보다 젊었을 적, 라이오스 왕은 피사의 펠롭스 왕을 만나 그의 궁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는 복도를 거닐던 중 우연히 펠롭스 왕의 아들 크리시포스를 봤다. 라이오스 왕은 미소년으로 유명했던 그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욕정에 눈먼 라이오스 왕은 끝내 크리시포스를 겁탈했다. 크리시포스는 이에 때아닌 봉변을 당해야 했다. 그가 치욕감을 안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이유였다. 펠롭스 왕은 뒤늦게 이를 알았다. 그는 죽은 아들을 안고 짐승처럼 울었다. 그때, 펠롭스 왕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라이오스 왕에게 저주를 내렸었다. “자네가 훗날 아들을 낳게 되면, 그 녀석 손에 죽기를 평생 기도하겠다”며.

아아, 신께서도 그때 그 순간을 보고 계셨던 것일까.

라이오스 왕은 고개를 떨군 채 테베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돼 있었다.

꼬챙이로 발목을 뚫다
라이오스 왕은 신탁을 받은 후 거짓말처럼 아내 이오카스테의 임신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또 얼마 안 돼 정말 아들을 보고야 말았다. 온 나라가 축제였던 그날, 라이오스 왕은 이오카스테에게 핏덩이를 빼앗다시피해 들어올렸다. “녀석은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와 맺어지는 저주를 안고 태어났소. 거두면 안 될 자식이오.” 라이오스 왕은 아들의 얼굴을 잠깐 노려보곤, 결심했다는 듯 꼬챙이로 녀석의 발목을 뚫었다. 아내의 절규를 뒤로 한 채 아들을 궁 밖 양치기에게 던지며 명령했다. “아이를 죽여 인적 드문 산에 내다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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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에 의해 산에 버려진 아기 오이디푸스. 3~6세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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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신생아를 받은 양치기는 선뜻 일을 저지르지 못했다.

양치기는 일단 테베와 코린토스 사이 국경지대 쪽 숲으로 갔다. 3~6세기경 새겨진 한 작품을 보면, 창을 든 양치기가 땅바닥에 놓인 아기를 보고 있다. 그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데, 당황스러운 현 상황에서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앙하며 울음을 터트린 아이의 퉁퉁 부은 발목도 눈길을 끈다. 양치기는 아기를 죽이지 못했다. 굶주린 짐승 밥이라도 되라는 마음으로 나무에 매달았다. “아가야. 미안하다….”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다행히 곧 다른 인기척이 들렸다.

이번에는 테베가 아닌 코린토스의 양치기였다. 눈앞 광경에 기겁한 그는 아기를 품에 안았다. 자식이 없어 고심하던 코린토스의 폴뤼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에게 녀석을 바쳤다. “…그런데, 아이의 발은 왜 이렇게 부었는가.” “죽어서도 부모를 찾아와 원망하지 말라는 뜻이겠습죠.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질이 나쁜 인간의 소행인 건 확실합니다.” 폴뤼보스 왕은 이 안타까운 아기를 아들로 맞았다. ‘오이디푸스’. 즉, ‘부풀어 오른(oideo) 발(pous)’이라는 이름을 붙인 채.

워낙 어릴 적 일인 만큼, 오이디푸스는 자라면서 그가 겪은 비극을 다 잊었다.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 왕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어느새 건장한 청년으로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오이디푸스는 연회 중 한 취객에게 “너는 폴뤼보스 왕의 친아들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만다. 전승에 따라선 그 취객이 폴뤼보스 왕의 친동생이었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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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듣는 오이디푸스, 3~6세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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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에 빠진 오이디푸스는 곧장 델포이 신전을 찾았다.

인간 아닌 전능한 신의 음성으로 진실을 가릴 요량이었다.

“제가 폴뤼보스 왕의 친자식이 맞습니까.”

오이디푸스는 델포이 여사제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생각도 하지 못한 소름 돋는 말만 내뱉었다. “…너는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또, 네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직접 신탁을 듣는 모습의 석관 작품도 있다. 굳은 얼굴의 오이디푸스,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없다’는 표정인 신의 형상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듯하다. 오이디푸스는 충격적 예언만 가슴에 새긴 채 궁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날 밤 코린토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짐을 쌌다.

…그러고 보니 여사제는, 내가 먼저 던진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건 폴뤼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 모두 너무나도 당연히 내 친부모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사라지면 가족 사이 재앙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었다.

신탁의 첫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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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블랑, 라이오스 왕을 죽이는 오이디푸스



“어이, 나그네. 당장 길을 비켜라.”

“제가 먼저 내려가고 있었으니, 그쪽이 비키시지요.”

옆 나라 테베로 몸을 옮기기로 한 오이디푸스는 국경지대의 좁은 길에서 마차와 마주했다. 오이디푸스는 마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버텼다. “이놈아! 이 마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고는 있느냐.” 말에서 내린 마부가 오이디푸스에게 다가가 소리를 빽 질렀다. 자처해 도망자가 된 오이디푸스는 마부의 말 따위 귀담아들을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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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오이디푸스가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죽이는 모습,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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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어른의 말을…!”

오이디푸스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본 마부는 칼을 척 빼들었다. 오이디푸스가 끌고 가던 말 한 마리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 모습에 울컥한 오이디푸스는 이성의 끈을 놓았다. 그 또한 칼을 꺼내 눈앞 마부와 하인 무리를 죽였다. 기어코 마차 안에서 누군가 번쩍이는 차림으로 나왔지만, 그 또한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죽여버렸다. 이와 관련해선 작자미상의 옛 프레스코화가 있다. 오이디푸스는 빨간 망토만 단출하게 두르고 있다. 그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고는, 날을 세운 채 한 남성의 급소로 그대로 찔러넣는다. 목에서 피를 뿜는 그는 오이디푸스보다 늙어보인다. 복장도 훨씬 고급스러워보인다. 사실, 마차 안에서 나온 이는 오이디푸스의 진짜 친아버지 라이오스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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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자비에 파브르,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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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라이오스 왕은 가정의 여신 헤라의 미움을 받고 있었다.

은인을 저버린 죄와 갓난쟁이 친아들(오이디푸스)을 죽이려고 한 죄, 그 이후 이어간 문란한 사생활 등에 따른 일이었다.

헤라는 괴물 스핑크스를 시켜 테베를 혼란에 빠뜨리기 시작했다.

스핑크스는 행인에게 아리송한 수수께끼를 냈고, 틀린 답을 말하면 즉시 송곳니를 내보여 살을 씹어먹었다. 정답을 말한 이가 한 명도 없었기에 해골은 산처럼 쌓여갔다. 전전긍긍하던 라이오스 왕은 이에 다시 신탁을 들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마차를 끌고 델포이 신전으로 가던 중 오이디푸스를 봤고, 그의 손에서 끝내 허무한 최후를 맞은 것이었다. 결국 라이오스 왕의 “너는 아들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신탁, 오이디푸스의 “너는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는 신탁 모두 실현되고 말았다. 당시에는 서로의 ‘진짜’ 정체를 모르긴 했지만.

공포의 스핑크스
소문은 늘 인간을 앞지르는 법이다.

라이오스 왕의 죽음은 테베 곳곳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스핑크스의 공포를 안고 산 테베 시민들은 왕마저 갑작스럽게 죽자 더욱 불안해했다. 이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섭정 격으로 잠깐 테베를 통치하게 된 왕비 이오카스테의 오빠 크레온은 이에 파격적인 조건을 건다. “스핑크스를 처리하는 이에게는 테베의 왕위, 아울러 남편 잃은 내 여동생 이오카스테와 결혼할 수 있는 특권을 주겠다”는 게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듣고 호기롭게 나선 사람 중 살아돌아온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수수께끼를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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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에밀 아르반,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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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여. 그곳은 지나갈 수 없다.”

길을 막던 마차를 박살 낸 후 다시 여정에 오른 오이디푸스는 테베 길목에서 한 괴물과 마주했다. 그것은 여성의 얼굴과 가슴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독수리의 날개와 사자의 네 다리도 달고 있었다. 바짝 세운 꼬리는 독사임이 분명했다. 녀석이 스핑크스였다. 주변에는 인간의 머리뼈와 넓적다리뼈 따위가 뒹굴고 있었다. “그대에게 수수께끼를 낼 테니, 정답을 말하면 길을 비켜주겠다.” 스핑크스의 목소리는 나른했다. “하지만 오답을 말하면, 즉시 그대를 잡아먹겠다.” 괴물은 때마침 허기가 진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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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08. 캔버스에 유채, 189x144cm,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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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대면 순간을 그렸다.

오이디푸스는 어디 해보라는 듯 도발적인 자세를 취한다. 굴러다니는 뼛조각을 보고도 겁먹지 않는다. 앵그르는 스핑크스에게 젊은 여성의 얼굴을 씌웠다. 몸집은 보통 인간과 다를 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화폭 속 스핑크스는 겁을 상실한 오이디푸스의 모습에 외려 본인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듯도 하다. 뒤에 선 또 다른 남성은 이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그래. …네가 언제까지 당당할 수 있을지 보겠다.”

스핑크스는 숨을 깊이 들이쉬곤 비웃음을 흘렸다. “나그네여. 아침에는 네 다리, 낮에는 두 다리,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인가.” 스핑크스는 호기롭게 이빨을 내보였다. 이는 그간 수백 번, 수천 번은 낸 문제였다. 여태껏 아무도 맞추지 못했으며, 그렇기에 모두 백골이 돼야 했던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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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모로, 승리의 스핑크스,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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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모로가 이처럼 의기양양한 스핑크스의 자태를 그렸다. 잔뜩 치장한 스핑크스는 한 제국의 여왕인 양 당당하다. 그런 그녀 밑으로는 희생자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림 제목은 <승리의 스핑크스>다.

…그러면 그렇지.

스핑크스는 생각에 잠긴 듯한 사내를 향해 차츰 걸어갔다. 공기도, 산과 바위도 모두 조용했다. 저놈. 이제 곧 우물쭈물하며 뒤로 물러설 텐데, 곧장 달려들어 살점을 뜯어야겠어. 스핑크스는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막 날개를 펼쳐 뛰어드는 그때…. “그건 사람이야.” 오이디푸스가 정적을 깼다. “어릴 적엔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선 두 다리로 걷고, 늙어선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이지.” 스핑크스는 당황했다. 정답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완벽한 답과 해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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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 캔버스에 유채, 206.4x104.8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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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를 통해 그 순간도 표현했다.

오이디푸스의 가슴팍에 닿은 스핑크스는 그가 뱉어낸 답을 듣고 돌처럼 굳어있다. 송곳니로 목을 물지도, 발톱으로 가슴팍을 뜯지도 못한다. 당당한 오이디푸스 앞에서 스핑크스는 수줍은 소녀가 된 듯한 모습도 보인다. 굴욕감을 이기지 못한 스핑크스는 곧장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그냥 자리를 비켜준 뒤 도망쳤다는 말도 있다.

한편 스핑크스가 또 다른 문제를 냈다는 설도 있다.

가령 “서로가 서로를 낳는 두 자매가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또는 “아침에는 커지다 정오에는 사라진다. 오후부터 다시 커지다 밤에는 또 없어진다. 녀석의 정체를 말하라”는 식의 물음이다. 각각의 답은 ‘낮과 밤’, ‘그림자’다. 확실한 건 스핑크스가 무슨 수수께끼를 말했든, 오이디푸스가 주저 없이 다 정답을 말했다는 것이다.

운명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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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모로, 나그네 오이디푸스, 1888년경, 메츠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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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를 없앤 오이디푸스는 개선장군처럼 테베 땅을 밟았다.

이번에도 소문이 인간보다 빨랐다. 그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영웅 대접을 받았다. “허무하게 죽은 라이오스 왕 대신 나라를 잘 이끌길 바랍니다.” 크레온은 약속대로 오이디푸스에게 왕관을 씌웠다. 그리고 라이오스 왕(오이디푸스가 죽인 자신의 친아버지)의 부인, 즉 오이디푸스의 친어머니이자 전 왕비인 이오카스테와 결혼식도 열어줬다. 당시 이오카스테는 중년이었다. 다만, 젊음을 잡아두는 이른바 ‘하르모니아의 목걸이’가 있어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이디푸스는 이로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예언을 따르고 말았다. 물론, 결혼식 순간에도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는 서로의 진짜 정체를 몰랐다.

오이디푸스는 선정으로 테베의 번영을 이끌었다.

오이디푸스의 가정도 나라만큼 평화로웠다. 이젠 아내가 된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아들 둘과 딸 둘 등 자식 넷을 봤다. 그는 온갖 문란한 일을 벌이는 신화 속 여러 영웅과 달리 가정적인 면도 갖췄다. 바람도 피우지 않고, 당시 왕으로는 관례처럼 여겨진 첩을 두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고개를 든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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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푸젤리, 자기 아들 폴리네이케스를 저주하는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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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평성대도 잠시였다.

언젠가부터 테베에 비가 오지 않기 시작했다. 땅이 쩍쩍 갈라졌다. 그간 겪은 적 없는 심각한 가뭄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이를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는 다시 델포이 신전을 찾아 신탁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왕이 자리를 비울 수 없을 정도로 비상인 만큼, 직전에 그에게 왕위를 준 크레온을 보냈다. 신탁을 듣고 온 크레온은 아리송한 얼굴로 오이디푸스 앞에 섰다.

“제가 당신에게 왕관을 드렸을 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나보다 앞서 왕이었던 라이오스 왕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맞습니다.” 크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 그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라이오스 왕은 도적에게 살해당한 것이었습니다.” 크레온은 잠시 뜸을 들인 후 오이디푸스에게 신탁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라이오스 왕을 죽인 그놈을 찾아 복수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작에 도망쳤을 그 자식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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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싱글톤, 만토와 테이레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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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얼마 후, 크레온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크레온을 시켜 테이레시아스를 데려오게끔 했다. 그는 인간 중 최고의 예언가로 꼽히는 자였다. “왕이시여. 송구하오나….” 오이디푸스 앞에서 바짝 엎드린 테이레시아스는 입을 열기를 망설였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시오. 내가 즉시 그 살인자의 두 눈을 뽑고 나라 밖으로 쫓아내주겠소.” 오이디푸스가 그 앞에서 맹세했다.

“왕께서는 과거에 길을 막은 마차 무리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지요?” “그렇소.” “그들을 죽여버렸지요?”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이 나를 죽였을 것이오.” “실은, 라이오스 왕을 죽인 이는 오이디푸스 왕 당신입니다.” 순간 정적이 깔렸다. 얼굴이 일그러진 오이디푸스는 잠자코 있는 크레온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라이오스 왕을 죽일 수 있겠어. 내 왕위를 도로 빼앗기 위한 계략이군. 자네가 저 늙은이와 진작에 말 맞춰 지어낸 말을 읊는 것 아니오?” 격분한 오이디푸스는 칼자루를 쥐었다.

이때….

“오이디푸스 왕이시여. 왕의 고향 코린토스에서 전령이 찾아왔습니다.” 신하가 다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신하를 뒤따라온 전령이 예를 갖춘 후 엎드려 말했다. “코린토스의 폴뤼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가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오이디푸스는 크게 슬퍼했다. “다행히 그 지독한 예언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혼잣말을 하며 안도의 한숨도 내쉬었다.

“여보.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 예언이라니요?” 이 모든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던 이오카스테가 그 말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퍼즐을 맞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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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이 늙은 목동에게 옛일을 듣고 있는 모습. 3~6세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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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 폴뤼보스 왕을 죽이고 어머니 메로페 왕비와 결혼한다는 고약한 말이었소. 이제는 빗나간 예언이라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하오?”

옛 기억을 더듬는 이오카스테의 눈에는 어느덧 불안이 잔뜩 서려있었다. “오이디푸스 왕이시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엎드려있던 전령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폴뤼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는 왕의 친부모가 아니옵니다. 실은, 왕께서는 갓난아기 시절 테베와 코린토스의 국경지대에서 발견돼 이들에게 양아들로 받아들여진 존재십니다. 그러니까, 예언이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이것들이 또!”

오이디푸스는 크레온과 예언가 테이레시아스, 코린토스의 전령을 차례대로 째려보며 격분했다. “왕이시여. 예언가의 말이 맞습니다. 사실…. 제가 그때 숲속에서 갓난아기였던 왕을 거둔 양치기였습니다. 저 또한 그 일을 계기로 궁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겁니다. 폴뤼보스 왕께서 이를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 전령이 바짝 엎드리며 말했다.

“여보. 혹시…. 발목에 흉터가 있는지요?”

“그렇소. 무척 어릴 때 난 상처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꼬챙이로 찔린 듯한 자국이 있소.” “세상에.” 이오카스테는 경악했다. “넌 내가 낳자마자 발목이 꿰어진 채 버려진 아들이었구나!” 이오카스테는 발작하듯 소리쳤다. “그 예언도 결국 이뤄지고 말았다니!”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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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카바넬, 이오카스테와 이별하는 오이디푸스,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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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카바넬이 당시 난리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내놓았다.

카바넬은 전말을 알아차린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작별 인사 정도는 했을 것으로 상상한 듯하다. 충격에 쓰러지고, 온몸에 힘이 풀리고, 수군거리고, 누군가는 달려들고 또 누군가는 제지하는 등 모습 또한 모두 담겨있다.

발목의 흉터, 출생의 비밀, “마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아느냐”던 당시 마부, 나이로만 치면 어머니뻘인 아내 이오카스테….

오이디푸스는 비로소 모든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오이디푸스는 주저앉아 머리를 싸맸다. 절망에 젖은 이오카스테는 이미 극단적 선택을 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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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빌헬름 에커스베르크,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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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는 직전에 그가 한 약속을 떠올렸다.

죽은 이오카스테의 귀에서 귀걸이를 뺀 오이디푸스는, 그 뾰족한 끝으로 자기 두 눈을 찔렀다. 훗날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쓰는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가 찌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눈을 뽑아버리겠다”는 맹세까지 지켰다고 서술했다. 오이디푸스는 그대로 눈이 먼 채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는 테베를 등졌다. 거지꼴이 된 채 여러 땅을 방황했다. 오이디푸스의 네 자식 중 오직 딸 안티고네만 그의 곁에 끝까지 머물렀다.

비극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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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녜 가녜로, 아이들을 신에게 맡기는 눈 먼 오이디푸스, 1784, 캔버스에 유채, 122x163cm,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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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가 늙고 병든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테세우스는 떠돌이가 된 오이디푸스를 궁에 맞이해준 유일한 왕이었다. “그대는 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 두 눈을 수염에 매단 채 맨발로 다니는 겁니까?” 오이디푸스는 테세우스의 이러한 다정한 물음에 자초지종을 들려준 것이었다.

테세우스는 과거 크레타섬에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오던 중 아버지 아이게우스와 약속을 잊은 적이 있었다.

살아 돌아오면 흰색 돛을 달겠다는 약속을 망각한 채 검은색 돛을 걸고 귀환한 일이었다. 자식이 죽은 줄 안 아이게우스는 그대로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는 이후 자기가 아버지를 죽인 것과 다름없다며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그렇기에 오이디푸스의 기구한 사연에 진심으로 함께 울어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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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크란 진 해리엇(풀크란 장 하리에트·Fulchran-Jean Harriet),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1798, 캔버스에 유채, 157x134cm, 더 클리블랜드 뮤지엄 오브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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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 이야기가 온 세상에 전해질 터이니, 저는 미련 없이 죽으러 가겠습니다.”

오이디푸스는 테세우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이디푸스는 딸 안티고네와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마음이 편치 않던 테세우스도 동행했다. 한참을 걷던 오이디푸스는 과거 그가 버려진 테베와 코린토스 사이 국경지대에 닿았다. 그곳 구석진 곳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저는 이곳에서 생을 마치겠습니다.” 테세우스와 안티고네 모두 만류했지만, 오이디푸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동굴 밖으로 나온 이는 둘 뿐이었다.

그가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이 또한 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한을 품고 온 사내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을 남긴 채 스러지고 말았다.

<참고 자료>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민음사

오이디푸스 이야기, 소포클레스, 살림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웅진지식하우스

<후암동 미술관 신화 편 읽는 순서>

<시즌 1 : 프로메테우스>

1)“독수리가 간 쪼아도 참는다” 최악고문 받는 男, 무슨 사연

2)“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

3)“네 엄마 뼈를 던져라” 화들짝 놀란 명령…울면서도 할 수밖에

<시즌 2 : 헤라클레스>

4)“앗, 아파” 근육질 아기가 빨아들인 모유…뻥 걷어차고 싶었지만

5)“절세미녀 셋이 있는 곳에 가쇼” 근육男은 공포에 떨었다…무슨 일

6)“너, 내 노예가 돼라” 살인죗값 다 치렀는데…이번엔 또 웬 날벼락

7)“나랑 3년 노예계약해” 여왕과의 동거…‘강제여장’ 굴욕까지 참았더니

<시즌 3 : 테세우스>

8)미모의 아내 “저 남자 죽여야해요” 남편 현혹…소름 돋는 ‘속마음’은

9)‘소 머리-사람 몸뚱이’ 아기 태어났다…‘폭풍성장’ 거듭, 끝내 최후는

<특별 편>

10)“제가 봤어요” 女납치 순간 밀고했다가…이렇게까지 ‘보복’ 당할줄은(시시포스)

11)“죽은 아내 돌려주세요” 꽃미남의 눈물 호소…‘비장의 무기’ 꺼낸 사연(오르페우스)

12)“父는 죽고, 친모와 결혼하고” 재앙같은 예언…당사자 아들의 기구한 사연(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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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랜스 앨마 태디마, 아폴론의 여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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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말풍선
지난주 한 행사장에서 우연히 마주한 독자님. 제가 좀… 많이… 뚝딱거렸지요? 쑥스러워서 그랬습니다. 그날,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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