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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업자금 5800만원을 은행에서 인출해 가방에 넣은 ㄱ씨가 횡단보도에서 가방을 놓고 떠났다. 가방만 덩그렇게 남았는데, 이를 본 한 남자가 집어갔다. 어찌어찌해서 돈 한 푼 안 쓰고 남자는 가방을 돌려줬지만, 그는 처벌받았다.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워가면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길바닥에 있는 물건은 주인이 있게 마련이다. 단지 주인의 손에서 떨어졌을 뿐이다. 우리 법은 이것을 ‘점유에서 이탈하였다’고 표현한다. 바람에 날려 내 집 마당에 떨어진 옆집 빨래도 점유이탈물이고, 내 집으로 잘못 배송된 물건도 점유이탈물이다. 잃어버린 물건은 모두 점유이탈물이다. 개도 예외는 아니다.
어머니의 우울증이 심해 반려견을 입양한 아들 ㄴ씨. 7년 동안 기른 개가 갑자기 실종되자 ㄴ씨는 시시티브이를 확인해 개를 트럭에 싣고 가는 50대 남자를 신고했다. 남자는 개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어 주인이 있다고 생각 못했다며 자백했지만, 개는 이미 탕제원에 보내져 개소주가 된 상황. 탕제원 주인은 개가 너무 짖어 빨리 죽였다고 진술했다.
주인이 버린 것이 아닌 한, 집 나간 반려견은 점유이탈물이다. 50대 남자는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적용돼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40시간 선고받았다. 반면 한 중국동포는 전봇대에 묶여있던 누군가의 반려견의 목줄을 몰래 풀어 훔쳤다. 그는 절도죄가 적용돼 처벌받았다. 묶여있었기 때문에 점유이탈물이 아니고 주인이 소유한 물건으로 본 것이다. 점유이탈물횡령죄보다 처벌이 중하다.
이처럼 점유이탈물은 일정한 공간에서 아무도 ‘점유하고 있지 않은’ 물건이다. 길에서 잃어버린 지갑은 ‘점유하고 있지 않은 물건’이고, 피시방에서 떨어뜨린 지갑은 피시방 사장이 ‘점유하고 있는 물건’이다. 형법은 ‘점유한다’를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석한다. 아무도 지배하지 않는 물건을 가져가는 것(점유이탈물횡령죄)보다, 누군가 지배하고 있는 물건을 가져갈 때(절도죄)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
도대체 ‘사실상의 지배’가 무슨 말일까? 판례에 따르면, 피시방 사장은 피시방 공간을 관리한다. 그는 그 공간에 있는 물건을 사실상 지배(점유)한다고 본다. 반면 지하철 운전자는 지하철을 운전하면서 그 공간을 지배(점유)하지는 않는다.
내 통장에 누군가 잘못 송금한 돈은 땡잡은 돈일까? 아니면 바닥에 떨어진 돈처럼 점유이탈물일까? 이것을 ‘착오 송금’이라고 한다. 대법원은 이 경우를 돈 받은 사람이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어차피 돌려줘야 할 돈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 돈을 써버리면 횡령죄가 된다. 점유이탈물이 아니다. 우리 법은 땅에 떨어진 돈을 줍는 것보다, 돌려줘야 할 돈을 써버리는 것을 더 나쁜 행동이라고 판단한다. 점유이탈물횡령죄보다 횡령죄의 법정형이 더 무겁다.
주인 없는 물건을 주워가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현금이 들어있는 지갑을 주우면 처벌 수위가 높다. 하여간 공짜를 좋아하다간 큰일 난다.
글·그림 장영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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