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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트럼프도 못말리는 美상원의원 막강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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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장벽 결의안 등 잇단 반란표, 자유무역·헌법가치 존중 한목소리

'시류에 영합 않는 지도자' 자부심… 상원 명칭, 로마 '원로원'서 따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소속 상원 의원들의 잇따른 반기에 부닥치고 있다. 대내외 정책부터 주요 인사, 대통령 재선 가도에 이르기까지 키를 쥔 여당 의원들이 트럼프를 공개 비판하거나 의회에서 반란표를 던지는 일이 잦아졌다. 뉴욕타임스 등은 국가 원로원 성격을 가진 상원의 '독립선언'이자 '포스트 트럼프' 구상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며칠간 '숙적'이었던 공화당 소속 고(故) 존 매케인 전 상원 의원에 대해 인신공격성 비판을 이어갔다. 보수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존경받던 보수 정치인을 모욕하자 매케인과 의정 활동을 함께했던 여당 의원들이 먼저 발끈했다. 밋 롬니(유타), 조니 아이잭슨(조지아),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은 물론이고 미치 매코넬(켄터키) 상원 원내대표까지 나서 트럼프를 비판하거나 매케인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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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 의회 분위기를 보면 이런 여당 의원들의 '반란'이 신기한 일이 아니다. 지난 13일 상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예멘 내전에 미군이 개입 말라'는 결의안이 찬성 54 대 반대 46표로 통과됐다. 상원 100석 중 공화당이 53명, 야당이 47명인데, 민주당이 낸 결의안에 공화당 7명이 가세했다. 다음 날인 14일엔 트럼프의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비상사태 선포를 무력화하는 결의안에 공화당이 12명이 무더기 이탈해 59대41로 가결됐다. 지난 1월 '장벽 예산 없이 무조건 정부 셧다운부터 해소하라'는 상원 표결도 여당 6명이 가세해 통과됐는데, 반란 강도가 나날이 세지는 것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자 여당 의원들이 각자도생에 나섰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임기 초인 2017년에도 트럼프 대표 공약인 '오바마 케어(전 국민 건강보험 의무화) 폐지' 법안이 여당 상원 6명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가 후보로 결정된 뒤 한창 주가를 올릴 때도 끝까지 지지를 거부한 의원도 12명이나 됐다. 당시 수전 콜린스, 마이크 리, 롭 포트먼, 리사 머코스키 의원 등은 3년 뒤인 이번 비상사태 무력화 결의 12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확신범'이란 얘기다.

반란파 의원들의 명분은 제각각이지만 각자 일관성이 있다. 자유무역과 작은 정부 같은 보수주의, 3권분립과 의회 존중 등 헌법 가치, 세계 자유민주 진영 수호와 동맹 존중 같은 논리다.

미 상원 의원의 힘은 대통령중심제에서 의회가 그에 상응하는 견제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건국 헌법 정신에 뿌리를 둔다. 상원(Senate) 명칭 자체가 고대 로마의 황제를 견제한 자문 기관 원로원(元老院·Senatus)에서 따온 것이다. 상원은 장관·대사·대법관 인준부터 전쟁 선포, 조약 비준 승인 권한을 가지며 대통령 탄핵 심판시 한국의 헌법재판소 기능도 한다. 연방제인 미국이 역사적으로 '대중의 총의(總意)'보다 독립된 주(洲)의 '대표된 민의'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도 상원의 지위는 독보적이다. 50개 각 주에서 일괄 2명씩 선출된 상원 100명이 인구 비례로 선출된 하원 의원 435명보다 막강한 입법권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임기도 하원이 2년, 대통령 4년인 데 비해 상원은 6년으로 가장 길다.

그만큼 상원 의원들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국가 지도자(statesman)'란 자부심이 강하고, 소속 정당이나 대통령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 대통령이 의원 공천권을 갖지 않으며 정당·의회 운영에도 직접 개입할 수 없는 것도 한 요인이다. LA타임스는 여당 반란 사태를 "아웃사이더이자 포퓰리스트인 트럼프 대통령과 기성 엘리트 정치의 핵심인 상원 간 파워 게임이 본격화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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