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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54] 복숭아나무를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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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복숭아나무를 심고

나무 한 그루 심고 손자놈 이름표 붙여주자며 아버지가 키 작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 사오셨다. 왜 무거운 것 들고 다니냐며 역정내는 어머니를 거들며 난 삽질을 한다. 잘 무른 봄 마당을 한 삽 푸자 까마귀 한 마리 꺼억 하며 소나무 위에서 운다. 나무를 심고 아버지와 아들과 나와 복숭아나무 이렇게 넷이서 봄볕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새순이 텄으니 이틀이면 꽃이 필 게다. 나뭇가지에 손자 쪽지명패 걸며 아버지는 풀어진 흰 머리카락 추스르고 꽃처럼 웃었다. 사진에는 눈물이 안 보였으면 좋겠다.

―윤영범(1967~ )

나무 심는 철이 왔습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무를 심는 일은 생각을 심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고사리 같은 크기가 자라서 하늘을 덮습니다. 그 아래 사람들이 모여 쉬며 웃습니다. 그러한 상상을 함께 심지요. 여차하면 당대를 위한 나무가 아니기 십상입니다. 그 열매를 바라며 웃을 사람이 꼭 제 후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 넉넉함을 심는 일입니다. 책상머리 공부보다 이러한 행위가 월등히 큰 공부임을 알았으면 합니다. 몸이 쇠해지는 아버지에게 손자가 생겼습니다. 손자는 오래 기다려 맞는 봄꽃입니다. 그 손자를 기념하는 나무 하나를 고릅니다. 복숭아나무입니다. 옛이야기 속 ‘무릉도원’의 평화를 손자에게 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내가 사라진 훗날 이 나무가 대신 너를 보리라….’ 이러한 자막이 할아버지의 마음 밑을 흘러갑니다. 아들은 그 마음을 읽습니다. 새 생명이 오고 또 묵은 생명은 멀어져간다는 섭리에 눈이 젖습니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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