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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분수대] ‘한국형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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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하현옥 금융팀 차장


1987년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이 갑자기 늘어났다.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GDP는 한 나라의 경계 내에서 만들어진 경제 산출을 모두 합한 수치다. 국가의 경제 규모를 측정하는 표준 척도로 쓰인다. 흔히 말하는 경제성장률은 GDP 증가율을 의미한다.

당시 이탈리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비공식 경제(지하경제)였다. 비공식 경제 활동은 세금을 내지 않고 정부 허가를 받지 않거나 정부 규제를 준수하지 않는 상거래와 기업 활동을 지칭한다. 이탈리아 통계청이 비공식 경제 추정값을 GDP 통계에 넣기로 하며 하룻밤 사이 경제 규모가 20%나 커졌다.

이탈리아 지하경제의 중심에는 마피아가 있다. 그 규모는 대략 가늠할 뿐이다. 이탈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불법 지하경제 규모는 2080억 유로(약 268조원)다. GDP의 12.6% 수준이다. 4대 마피아 조직의 연간 순수익은 800억 달러로 추산된다. 2018년 10월 기준 오만의 GDP(817억 달러)와 맞먹는다.

마피아의 마수는 곳곳에 뻗어 있다. 관광 및 소매업, 부동산업 등 합법적 영역에 발을 들였다. 최근에는 농업과 쓰레기 처리, 난민 사업까지 손대고 있다. 그럼에도 마피아의 전통사업은 마약 밀매와 매춘 등 각종 불법 활동이다. 권력과 결탁한 마피아는 탈세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피해 간다.

마약 유통과 성매매, 폭행, 탈세와 경찰과의 유착 등이 얽혀 있는 ‘버닝썬 사건’에 마피아가 오버랩되는 이유다.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가수 승리 등이 참여한 단체 대화방 자료를 공익 제보한 방정현 변호사는 ‘한국형 마피아’의 탄생이라고 지적했다. K팝의 인기로 연예인이 부와 지위를 얻은 뒤 사업가와 연결돼 협력하고, 공권력과의 유착까지 이뤄졌다는 얘기다.

“마피아를 알아야 이탈리아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2004년 로마대에 마피아 강좌가 개설됐을 때의 반응이다. ‘연예인-사업가-공권력’의 삼각편대인 한국형 마피아는 한국을 이해하는 고난도 레벨이다. 충격에 빠진 수많은 K팝 팬들이 뜻하지 않게 ‘한국통’이 될 판국이다.

하현옥 금융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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