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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삶은 천성과 관성"... 송강호, 신연식 감독이 풀어낸 ‘삼식이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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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는 "정해진 대열을 따르지 않는 배우가 되고자 평생 노력했다"고 말했다. 사진 월트디즈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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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이 먹고 싶어 사람을 죽였던 소년은 성인이 돼선 국회의원 집안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투표함 바꿔치기 등 불법도 서슴지 않았다. 가족과 친척,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을 배곯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삼시 세끼를 책임진다는 의미의 별명 ‘삼식이 삼촌’으로 불렸다. 모두가 배불리 먹는 나라를 만드는 게 꿈인 김산(변요한)을 만난 뒤엔 그를 국무총리로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

디즈니 플러스의 16부작 드라마 '삼식이 삼촌'(19일 종영)에서 배우 송강호(57)가 연기한 박두칠 캐릭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영웅과 악인을 오가는, 박쥐 같은 인물을 송강호는 섬세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입체적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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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 삼촌'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의기투합한 박두칠(오른쪽, 송강호), 김산(변요한).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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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시청자들이) 박두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으면 했다. 나쁜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어떨 땐 따뜻한 면모도 있는 그런 모습들이 점철되어 결말까지 가길 바랐다”면서 “16부작을 모두 봤을 때 비로소 분명해진다. (박두칠은) 현실에선 비열하고 추악한 짓을 하면서도 만인의 풍요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라고 말했다.



“칸 수상처럼 ‘삼식이 삼촌’도 하나의 점”



드라마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군부 정권이 들어서는 격동의 현대사를 다뤘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신연식 감독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원형이 이 무렵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그 원형을 찾아가는 느낌으로 그 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그렸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박두칠 캐릭터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막강한 로비력을 과시하고, "내가 바로 자전과 공전처럼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사람"이란 자신감으로 김산에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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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변요한)에 음식을 들고 접근하는 박두칠(변요한)과 그를 수상하게 여기는 김산.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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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시대 배경은 달라도, 변화를 꿈꾸고 그 꿈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도 존재한다. 역사적 사건에 몰두하지 말고 가상의 이야기로 봐준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35년 연기 인생 첫 드라마로 ‘삼식이 삼촌’을 택한 이유도 스토리에 대한 공감이었다. “박두칠처럼 누구나 풍요를 꿈꾼다. 그렇지만 (풍요가 삶의) 목적이 될 순 없다. 드라마에서도 결국엔 살아남을 사람이 살아남은 것”이라고 했다.

이어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도, 이 드라마를 찍은 것도 연기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점인 순간들이다. 점을 찍어가다 보면 큰 격려도 받고 영광된 풍요의 순간을 맞이할 때도 있는 것이지, 상을 받기 위해 연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덧붙였다.



“모든 이유는 천성과 관성”



송강호의 말을 빌리면, ‘삼식이 삼촌’은 송강호와 신 감독이 찍은 세 번째 점이다. 신 감독이 각본을 쓴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2023), 신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겸한 ‘1승’(개봉 예정)에 이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6일 만난 신 감독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단편적인 성격 말고, (긴 호흡의) 드라마에서 다양한 얼굴의 송강호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박두칠의 ‘타고난 천성과 살아온 관성’을 모두 표현해낸,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배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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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식 감독은 '조류인간', '프랑스 영화처럼' 등 독립영화계에서 유명한 작품을 해왔다. 사진 월트디즈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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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과 관성은 극 중에서도 박두칠의 주요 대사로 등장한다. 입에 풀칠 하며 사는 게 가장 중요한 박두칠은 운명의 주인이 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시키는 일만 하다가, 김산이란 변수를 만난다. 김산에 끌린 박두칠은 그를 ‘장관님’이라 부르며 새 주인으로 받아들인다. 김산은 박두칠이 바라던 대로 장관이 되지만, 박두칠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인들에게 총살당한다. 박두칠의 몰락은 3·15 부정선거,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등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더욱 비극적으로 묘사된다.

신 감독은 “역사적 배경의 전후 관계를 따져가며 만든 드라마가 아니다. 배경만 차용했고 인물들은 모두 가상”이라면서 “선과 악을 명쾌하게 이야기하면 쉽겠지만 그건 싫다. 우리 삶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각기 다른 성격의 캐릭터들이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지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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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 삼촌' 포스터. 사진 월트디즈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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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글로벌 플랫폼에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삼은 건 약점으로 작용했다. ‘칸의 남자’ 송강호 주연작임에도 화제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송강호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소구력이 부족한 시대물”이라면서도 “이 작품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한국 콘텐트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일 것으로 확신한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과 캐릭터가 있다면 정해진 대열을 벗어나는 길일지라도 거침없이 도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감독은 “작품의 규모나 플랫폼과 무관하게 내 천성과 관성을 유지하며 작품을 만들어왔다. 내 작품의 엔딩은 다 똑같다. 삶의 고통과 원인, 삶을 작용시키는 것들에 대한 탐구다. ‘삼식이 삼촌’ 또한 이러한 분명한 목적과 이유로 최선을 다한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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