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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매경춘추] 춘풍추상과 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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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세먼지로 곤혹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봄이 왔다. 햇살도 한결 따사롭고, 스쳐가는 바람도 부드럽다. 봄바람을 말하다 보니 청와대에 걸려 있다는 춘풍추상(春風秋霜·남에게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라)이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태를 비롯한 일련의 정책 현안들도 좀 더 부드럽게 대처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우리는 흔히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두 가지 극단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은 처벌하고, 바람직한 행동에는 보상을 준다는 것이다. '신상필벌'이니 '당근과 채찍'이니 하는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람은 말(馬)이 아니다. 외부의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적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능동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날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은 사람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당근과 채찍이 아닌 제3의 정책수단을 제시한 바 있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교수 등이 말하는 '넛지(nudge)'가 바로 그것이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옆구리를 찌르듯이,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 사례가 넛지의 고전적 사례로 회자된다. 소변기에 파리를 그려 놓자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량이 80%나 줄었다는 것이다. 당근이 없어도, 채찍이 없어도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넛지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 방식이라고 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 개입을 용인하되, 선택의 자유를 지키거나 증진시키는 개입 방식이다. 행동주의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공정하지 않고 편향적이면서도 과도한 힘을 행사하여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령이나 강제보다 넛지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벌 강화는 용수철처럼 반발력을 더 키울 수도 있다.

다원화한 민주사회일수록 정책 결정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넛지가 필요하다. 넛지를 통해 자발적이면서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정책에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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