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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트럼프, 시진핑의 ‘힘’ 부러웠나...펜타닐 불법화 뒷얘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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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 정하면 별도 절차 필요없이 집행...체제 차이 드러낸 무역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일화를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미⋅북 2차 정상회담을 위해 25일 배트남 하노이로 떠나기전 백악관에서 주지사들과 조찬을 하며 미⋅중 무역협상을 얘기하는 대목에서다.

백악관이 공개한 조찬 연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닐이라는 약물을 규제하겠다는 시 주석의 약속과 중국에서 루이뷔통 선글라스를 훔치다가 구속된 3명의 미국 대학 농구선수 석방과 관련한 대화 내용을 전하며 미국과 중국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일보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작년 12월 1일 아르헨티나에서 업무만찬을 갖고 90일간의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일로 시한이 설정된 이 휴전을 연장해 협상을 지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 주석과 업무만찬을 가졌을 때 펜타닐을 중국에서 불법화해달라고 요청했고, 시 주석은 흔쾌히 응했다. 미국에서만 이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가 6만3000여명(2016년)에 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0월 이와 관련해 ‘공중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었다. "펜타닐이 100%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펜타닐 불법화를 위해) 다른 승인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아니오"라는 답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이 나라(미국)와 매우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며 "그(시 주석)는 다른 어떤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의회로부터 국경장벽 건설 예산 승인에 어려움을 겪는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독단으로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비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일화는 의법치국을 내세우는 중국에서 법치보다 인치가 지배하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2017년 11월 첫 방중했을 때 미국 대학 농구선수 석방을 시 주석에 직접 부탁한 일화를 털어놓으면서도 미국과 중국이 조금 다르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저녁에 쇼를 볼 때 시 주석에게 3명의 농구선수를 꺼내줄 수 있냐고 부탁하자, 이 사실을 몰랐던 시 주석은 곧 바로 뒤편에 서 있던 수하를 불렀고, 2분여만에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나왔습니다." 구속된 위법자를 국가지도자가 한순간에 석방시킬 수 있는 건 3권(입법, 행정, 사법) 분립이 확보된 나라에서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당(黨)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는 시 주석의 ‘힘’이 부러웠을까.

앞서 지난 22일 시 주석의 특사로 위싱턴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벌인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측 대표들과 함께 면담한 자리에서도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펼쳐졌다. 기자들이 동석한 현장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대표단을 이끄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설전에 가까운 양해각서(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논쟁을 벌였다.

무역협상에서 논의중인 MOU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나는 MOU의 팬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자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MOU는 실제 계약이고, 구속력이 있는 법정용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동의하지 않는다. MOU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계약은 아니다"고 했다. 또 "최종 계약이 진짜다. 당신(라이트하이저)이 MOU를 체결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지만 내게 그건 큰 의미가 없다"며 "만일 MOU를 체결하면 그것을 구속력 있는 최종 계약으로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까"라고 되물었다.

이에 라이트하이저는 "이제부터 MOU라는 단어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 무역협정(Trade agreement)이라고 하겠다"고 했다. 그는 MOU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을 5차례나 반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제서야 "MOU를 하지 않고 곧 바로 무역협정에 들어갈 것"이라며 "좋다"고 반응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류 부총리에게 동의하냐고 물었고, "완전히 동의한다"는 답을 받았다. 양국은 지식재산권 보호, 기술이전, 농업, 서비스, 환율, 비관세장벽 등 6개 분야 무역협정 체결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공산당이나 정부내 주요 회의에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일단 결정되면 일사불란하게 밀어부친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논쟁을 벌이고, 이 내용이 가감없이 공개되는 건 미국과 중국의 다름을 보여준다.

베이징에서 지난 14, 15일 무역협상을 한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등을 시 주석이 접견한 뒤 공개된 내용은 양측의 입장을 전한 신화통신의 보도가 전부다.

무역전쟁 발발 이후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현지 언론의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중국에선 시진핑 정부를 찬양하는 보도만 나오는 것도 대조된다. 무역전쟁이 두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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