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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이용재의 외식의 품격] 1천원대 편의점 커피 비교해보니,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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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커피, 전체적으로 멀겋고 떫고 아린 맛 벗어나지 않아
이마트24의 ‘이프레쏘’ 가장 또렷한 맛
2등은 세븐일레븐의 세븐카페, 3등은 CU의 ‘겟 핫’

조선일보

GS25의 ‘카페25’./GS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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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 5번 출구 앞에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가 하나 있었다. 커피와 생과일주스 등을 파는, 20석 남짓으로 넓지 않은 평범한 카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개보수를 마친 왼쪽 옆 건물 1층에 스타벅스가 입점했다. 개인 카페 바로 옆에 프랜차이즈라니. 지속가능성에 먹구름이 짙게 낀 셈이라 거의 매일 앞을 지나면서 관찰했는데, 그럭저럭 손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괜찮은 나날은 길지 않았다. 어느 날 오른쪽 옆 가게에 저렴하지만, 양은 많은 주스 전문점(이라고 말하지만, 커피도 파는)이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가운데의 카페는 폐업했다.

◇ 900원짜리 무인 커피, 한 모금에 입맛 떨어져

사라진 카페도 아쉽지만 중요한 건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재빠른 인테리어 공사를 통해 빈자리가 ‘무인’ 카페로 변신했다. 커피 주문부터 추출까지의 전 과정을 기계가 맡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동판매기에서 메뉴를 골라 티켓을 사면 카운터 너머의 바리스타가 거의 자동화된 기계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음료를 만들어 내준다. 좁진 않지만 의자도 거의 없고 주방의 공간 비율도 적어, 단 1명의 상주직원이 커피 추출을 비롯해 일반적인 매장 관리도 하는 듯 보였다.

일말의 개성이라도 있는 개인 카페가 오른쪽으로는 거물, 왼쪽으로는 싸고 양 많음을 무기로 내세우는 프랜차이즈에 둘러싸인 뒤 결국 폐업했다. 빈자리는 인력이 최소한으로만 필요한 카페가 차지했다. 커피 한 잔에 900원. 과연 어떤 수준일까? 너무 궁금해서 마셔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모금 만에 바로 후회했다. 스페셜티 커피 등 맛과 향이 풍성한 커피를 어렵지 않게 마실 수 있는 현실인데, 그런 이면에 이 정도로 맛이 없는 커피도 여전히 팔리는구나.

멀건 가운데 떫고 아린 맛만 남은 따뜻한 물은 한국 최악의 커피라 꼽아왔던 고속도로 휴게소 커피보다도 맛이 없었다. 900원이니 금전적으로는 아쉬울 게 없지만, 단 한 모금에도 입맛을 확실히 버려준다는 사실만으로 아주 슬펐다. 또한 맛이 없어 많이 마실 수가 없으니, 카페인 보충 및 각성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슬픔이 배로 커졌다.

◇ 뜨거운 편의점 커피 비교해보니, 이마트24 ‘이프레쏘’ 우수

900원짜리 커피가 맛이 없다면 1000원짜리는 어떨까? 이미 편의점에서는 자체 브랜드의 즉석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약 20년 전에 팔았던, 미리 내려 향이라고는 전혀 없는 ‘드립 커피’에 비해서는 장족의 발전이지만 과연 먹을 만한 걸까? 900원과 1000원의 차이, 즉 100원에 이끌려 주요 편의점을 쭉 돌며 즉석커피를 두루 마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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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의 ‘세븐카페’./세븐일레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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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에 앞서 잠깐 커피에 대해 살펴보자. 과연 커피는 무엇이고, 어떻게 맛을 내 한 잔의 음료가 되는 걸까? 정설은 아니지만, 칼디라는 염소 치기 소년의 이야기가 있다. 때는 9세기, 칼디는 모는 염소들이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날뛰는 상황에 부닥친다. 살펴보니 어떤 열매를 먹었기 때문인데, 그게 바로 커피다.

오늘날의 커피는 그 열매의 과육을 벗겨 내고 남은 씨앗을 가공해 만든다. 열매만 벗겨내고 씻어 말린 커피가 ‘생두’고, 이를 구우면 ‘원두’가 된다. 원두를 갈아 고압에서 순간 커피의 정수를 추출한 게 ‘에스프레소’가 되는데, 그냥 마셔도 되고 모든 커피 음료의 핵심으로 쓰인다. 찬물이나 뜨거운 물에 부으면 ‘아메리카노’가 된다.

카페에서는 원두를 커피로 만드는 각 과정을 별도의 기계가 맡지만, 편의점의 커피 머신은 일체형이다. 원두의 보관과 갈기, 에스프레소 추출과 물의 혼합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컵으로 용량을 골라 계산을 한 뒤 기계에 받혀 두고 스위치만 누르면 한 잔의 아메리카노가 뚝딱 컵에 담긴다.

모든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파는 가운데, 일단 이마트24의 ‘이프레쏘(1000원)’가 가장 맛있었다. 가격을 고려하면 ‘싱글 오리진’, 즉 한 지역에서만 경작되는 원두로 커피를 내린다는 홍보 문구는 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단맛을 중심으로 표정이 비교적 또렷해 인상적이었으며 완전히 식은 다음에도 아주 불쾌하지 않아 마실만 했다.

2등은 세븐일레븐의 세븐카페(1000원)로, 1등과 격차가 좀 있고 표정이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끝에 남는 신맛이 차별점이었다. 그 뒤를 단맛과 쓴맛이 자기 몫은 하려고 발버둥 치는 CU의 ‘겟 핫’ (1200원)이 잇고, 마지막은 GS25 커피(1200원)가 900원짜리 ‘무인’ 카페의 것과 별 차이 없는 떫음과 아림으로 슬픔을 안겼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달자면, 평가는 편의점 커피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진 것이다. 어떤 것도 늘 마시던 전문점 등의 커피의 대안으로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의 품질은 아니란 말이다. 일단 하나같이 멀겋고, 떫고 아린 맛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개중 맛이 좋은 것들이 다른 커피 선택권이 전혀 없을 때 최후의 보루로 유용할 수 있고, 뒤로 갈수록 차라리 원조 싸구려 커피인 400원짜리 자판기 제품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수준이다. 지난여름, 긍정적으로 살펴본 차가운 종류와 달리 뜨거운 싸구려 커피는 아직 갈 길이 좀 남아 있으니 분발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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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재는 음식평론가다. 음식 전문지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를 연재했으며,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등 한국 음식 문화 비평 연작을 썼다. ‘실버 스푼’,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뉴욕의 맛 모모푸쿠’, ‘뉴욕 드로잉’ 등을 옮겼고,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문화 관련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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