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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이 옷가게, 가끔 갤러리도 정원도 파티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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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3.0' 시대]

공유는 기본, 여러 용도로 쓰는 '원 공간 멀티 유즈'로 만들어 생산·소비·유통을 한곳에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옷가게서 옷을 사는 건 '어제' 얘기다. 의류 매장에 미팅룸이 들어서고, 은행인지 서점인지 헷갈리는 공간에, 카페는 식물원이자 강연장으로도 쓰인다. 원래 용도에 더 얹어 다른 공간으로 변신하는 '원(one) 공간 멀티 유즈(multi-use)'. 하나의 목적성을 따르는 '공간 1.0' 시대에서 비용 절감과 공유를 앞세운 '공간 2.0'이 대세였다면, 이젠 공유를 기본으로 소비자 취향에 맞게 변신하는 '공간 3.0' 트렌드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조선일보

서울 '성수연방' 건물 1층의 '띵굴 스토어'(왼쪽)는 소규모 브랜드들을 전시·유통하면서 패키지 생산도 가능한 '공유 공장'을 품고 있다. 집 안에서 영감 받아 거실, 부엌, 다용도실 등으로 연결되는 디자인으로 '인테리어 쇼룸' 역할도 한다. 오른쪽은 3층 천상가옥. 온실이자 카페인 이 공간은 수시로 강연장 혹은 파티장으로 변한다.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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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키친에서 공유 공장으로…성수연방의 실험

1970년대 화학 공장을 리모델링해 최근 서울 성수동에 선보인 '성수연방'은 기존 복합문화공간에 '생산'을 접목시켰다. 'ㄷ 자' 모양 건물 왼편 1층에 있는 '띵굴 스토어'는 소규모 브랜드들을 모아놓은 '띵굴 시장'을 정식 매장으로 바꾼 1호점으로, '공유 공장'의 개념을 품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생산한 질 좋은 제품을 현장에서 쉽게 포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생산·소비·유통이 한곳에서 이뤄진다. 오른편 1층엔 육가공 전문점 존쿡델리미트, 만두로 유명한 창화당, 피자 시즌이 들어섰는데, 2층엔 이 업장들에 식재료를 공급할 '팜프레시 팩토리'가 3월에 문을 연다. 소규모 맛집을 모아놓은 광화문 D타워 '파워플랜트', 여의도 '디스트릭트Y' 등을 연 손창현 오티디코퍼레이션 대표의 작품으로, '공유 키친'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유 공장'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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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최소한으로 걸리고 공유 테이블과 가구 전시품이 주를 이루는 청담동 '나우하우스'. 갤러리이자 모임 공간을 지향하는 독일 베를린의 '1976 베를린' 콘셉트 스토어. (위부터) /최보윤 기자·M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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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연 지 한 달도 채 안 돼 4000여명 넘게 방문하며 '인스타그램 명소'로 거듭난 3층 '천상가옥' 카페는 통유리 천장에 바닥엔 난방선을 깔아 온실 구조를 갖췄다. 식물원 카페는 낯설지 않지만, 수시로 공유 강연장으로 변신하는 게 포인트. 손 대표는 "조금 뜨면 너도나도 비슷해져 상권이 망가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경계하기 위해,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춘 시설로 공간 재생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건 대신 사람으로 채워라…'공간 3.0'시대

지난달 서울 청담동에 문 연 의류 브랜드 '나우하우스' 플래그십스토어(대형단독매장)에 들어서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의류 매장인데, 990㎡(약 300평) 공간에 걸린 옷은 열 벌이 채 안 된다. 전시 공간 겸 대중을 위한 '공유테이블'이 한쪽 면을 채우고, 카페와 예술품들이 나머지를 채우는 일명 '문화 공터'. 가구 디자이너·건축가·설치미술가 등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그룹 '팀 바이럴스'와 협업해 설계됐다. 팀 바이럴스의 문승지 디자이너는 "내부 구조가 조립식(모듈)으로 설계돼 갤러리와 공연장 등으로 빠르게 변신할 수 있다"며 "옷을 덜 팔더라도 손님들이 모여 즐기다 보면 브랜드에 대한 친밀도와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남동에 문 연 삼성물산 '수트 서플라이' 역시 옷걸이 대신 남성들의 사교 공간인 파티오(patio·뒤쪽 테라스)를 대폭 확장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해외에서도 비슷하다. 지난 15일 MCM이 독일 베를린에 선보인 '1976 베를린'은 '힙스터'들의 집합소를 지향하며 제품은 극소수로 제한해 걸고, 아트 전시를 내세웠다. 리빙 브랜드 보치(bocci)의 맞춤 가구와 조명으로 갤러리 느낌을 풍긴다. 지난해 영국 코벤트 가든에 문을 연 '블루버드' 의류 매장 역시 집 모양의 건물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옷 대신 '정원'으로 채워놨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온라인 쇼룸' 역할에 그치는 오프라인 매장은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며 "소비자 취향에 따라 콘텐츠를 바꾸는 '라이프스타일 놀이터'가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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