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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여전히 손가락질받는 안중근 동상"…화려한 '제막식' 뒤, 관리는 '뒷전' [김기자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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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동상' 얼굴·가슴·구두 등 여러 군데 부식 진행…'점점 넓어져' /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했다'…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당시 뛰지 않아 / 안중근 의사 동상 조성비 2억원 이어 5500만원 들여…안이한 고증에 '혈세 낭비' / 화려한 '제막' 뒤, 관리는 '뒷전' / '추모의 벽'은 공사 흔적과 오물이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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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좌상(왼쪽)과 의정부 역 앞 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오른쪽)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내가 대한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 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노축하였으나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자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뜻을 이어 자유독립 이룬다면 죽는 자 한이 없겠노라." (안중근 의사-동포에 고함)

경기도 의정부시가 의정부역 앞 공원에 안중근 의사 동상을 설치해 일반에 공개한 지 1년여 만인 지난해 11월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화려한 제막식까지 가졌다. 1년 만에 제 공개된 안 의사 '추모의 벽' 잘못 해석된 채 새겨져 또다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2017년 8월 안 의사 동상을 의정부역 앞 공원에 세웠으나, 고증 오류와 동상 제작 배경을 둘러싼 잡음이 제기되면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지금까지 끊이질 않고 있다.

안 의사 동상은 중국 최우 작가의 작품으로 높이 2.5m, 가로 3.7m, 세로 1.3m 크기로 청동으로 제작됐으며 무게는 1200㎏에 달한다. 안 의사 동상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기 위해 달려가면서 품 안에서 총을 꺼내는 형상이다. 기존 국내에 설치된 동상과는 달리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 내 유력 민간단체인 차하얼(察哈爾) 학회가 의정부시에 기증했다.

차하얼 학회는 2009년 중국 정·재계와 학계에 영향력이 있는 한팡밍(韓方明) 주석이 주도해 만든 단체로, 국제전략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외교·국제관계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내에서도 대표적인 친한파인 한 주석은 안중근 장학금을 받고 공부해 평소 안중근 의사를 존경해 동상 기증에도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된 '안 의사 동상'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당시 안 의사의 모습 전혀 딴판이라는 것. 안 의사는 저격 당시 달려가지 않았다. 달려가는 형상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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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역 앞 근린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은 2.5m 높이의 청동으로 제작됐으며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자 달려가면서 품 안에서 총을 꺼내는 형상이다.


안 의사는 옥중 자서전에 통해 아래와 같이 저격 당시 상황을 아래와 같이 자세히 기록했다.

'어째서 세상 일이 이같이 공평하지 못한가, 슬프다. 이웃 나라를 강제로 뺏고 사람의 목숨을 참혹하게 해치는 자는 이같이 날뛰고 이같이 천지를 횡행하고 다니는데 어질고 약한 우리 민족은 왜 이처럼 곤경에 빠져야 하는가.'

울분을 참으며 용기 있게 뚜벅뚜벅 걸어 군대가 늘어서 있는 뒤편에 이르니, 러시아 관리들이 호위하고 오는 사람 중에 맨 앞에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한 조그마한 늙은이가 있었다.

'저자가 필시 이토일 것이다.'

생각하고 바로 단총을 뽑아 그를 향해 4발을 쏜 다음, 생각해보니 그자가 정말 이토인지 의심이 났다. 나는 본시 이토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잘못 쏘았다면 일이 낭패가 되는 것이라 다시 뒤쪽을 보니 일본인 무리 가운데 가장 의젓해 보이며 앞서가는 자를 향해 다시 3발을 이어 쏘았다. 만일 무관한 사람을 쏘았다면 일을 어찌하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러시아 헌병이 나를 체포하니 그때가 1909년 10월 26일(음력 9월 13일) 상오 반쯤이었다.

그때 나는 곧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코레아우라(대한 독립 만세)"를 세 번 부른 다음 헌병대로 붙잡혀 갔다.

안 의사는 지난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세 번 외치면서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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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동상 앞으로 많은 시민이 지나다니고 있다.


안 의사 동상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습과 전혀 다르다. 30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50대 모습이다. 안 의사 동상은 충분한 고증을 거쳐 제작이 가능하다. 조선 시대 또는 고려 시대의 역사 속 실존 인물은 당시 자료가 없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제작할 수밖에 없지만, 안 의사는 초상화나 당시 활동했던 자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고증을 거치지 않은 부분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의정부 한 관계자는 "작가의 작품성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달려가는 모습은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했고, 작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부실한 관리에 '혈세 낭비' 지적…'추모의 벽' 공사 흔적과 오물이 그대로

의정부역 유동인구는 5만 명가량으로 의정부에서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교통의 요지다. 지난 12일 찾은 의정부역 앞 근린공원. 안중근 의사 동상을 둘러보았다. 역동적인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왠지 어색했고, 이질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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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동상을 살펴보았다. 곳곳에서 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 의사 동상 2017년 8월 2억 원을 들여 설치됐다. 세계일보가 2017년 10월 26일(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 날) ‘부실 고증’ 단독보도 이후 비난이 잇따르자 지난 1년여 동안 5500만원가량 예산을 들여 바로잡는 작업을 해 왔다.

그동안 안 의사 동상을 둘러싼 구설은 이뿐만이 아니다. 안중근 의사의 외모와 다른 점, 안 의사의 상징인 네 번째 손가락(약지) 한 마디가 그대로 있는 점 등으로 엉터리 제작, 부실 고증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안 의사 동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 군데에서 부식 진행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심각해 보였다. 모자·가슴·구두 등 부식된 흔적을 쉽게 발견됐다. 보기에도 칙칙하게 얼룩이 졌고 일부는 표면이 벗겨져 있었다. 지난해 11월 22일 화려한 제막식을 가진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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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는 안중근 의사 동상에 대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시로 중국의 한 민간단체가 제작했고, 의정부시와 하얼빈시에 각각 하나씩 설치됐다. 제작비로 16억원이 들었다'고 밝혔지만, 동상이 시 주석의 지시로 제작됐다는 확인이 안 된 상태다. 안 의사 동상 옆 작품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시진핑 주석이 한-중 우호에 대한 큰 관심"이라는 문구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것뿐만 아니었다. 안 의사 동상을 둘러싼 추모의 벽은 각종 오물과 공사 흔적으로 얼룩져 있었다. 성급하게 깎고 글귀를 새겨 넣는 과정에서 추모의 벽은 얼룩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졌다. 각종 공사 자재와 돌을 새겨 넣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들이 군데군데 고스란히 남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안 의사 동상을 두고 부실 고증에 혈세 낭비했다는 비판에 추가로 5500만원을 들여 보수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만난 시민은 '불편한 기색'을 들어내기도 했다. 근린공원에서 만난 한 시민은 "부실 고증도 문제지만, 공무원들의 안일한 태도가 문제다"라며 "부실 고증으로 혈세 낭비에 됐다. 한두 푼도 아니고 다 세금인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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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동상을 둘러싼 추모의 벽에는 각종 오물과 공사 흔적으로 얼룩져 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안중근 의사 동상’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안중근 의사 동상이 청동 소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부식 난 부분은 연말에 수정 작업을 거쳤다"라며 "(보수 작업)업체에서도 내부에서 진행되는 부분이라 완벽할 수 없다며 다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공사 자국도 다시 확인해보겠다. ‘추모의 벽’이 곡선이 된 부분이라 완벽하게 깎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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