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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영상] 홍진아 “여성은 뭐든 욕망하고 성취할 수 있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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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바꾸는 언니들②] 홍진아 선샤인콜렉티브 대표





‘88올림픽’이 끝나고 태어났다. 스무살이 되던 해, 실력만 있으면 유리천장쯤은 부술 수 있다는 ‘알파걸’이 등장했다. 서른이 되자 직장에선 자책감을, 가정에선 죄책감을 느끼는 ‘슈퍼우먼’ 선배들이 보였다. 여성의 생존과 성공에 대한 서사는 늘었지만,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판의 기울기는 변함이 없었다. 이 판 자체에 균열을 내는 방법은 없을까. ‘알파걸’도 ‘슈퍼우먼’도 주지 못한 답을 찾고 싶어, 또래 여성들을 만나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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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안에 ‘기렉시트’(기자와 ‘브렉시트’를 합친 말)를 해야겠다.”

얼마 전 동료의 이 말을 듣곤 웃음이 터졌다. 물론 8할은, 언론계 ‘탈출’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빗댄, 생각지도 못한 두 단어의 재치있는 조합 덕이다. 유희의 단어가 될 정도로 가벼워진 퇴사의 무게를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선택지,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퇴사는 그렇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어렵거나 불합리한 조직 문화에 짓눌릴 때면 합격 통보를 받던 순간의 기쁨은 아스라이 멀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퇴사가 정답일까? 퇴사를 말하는 동료 중 그 누구도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진 못했다. 그럼 지금 내가 하는 일의 형태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볼 순 없을까. “전 세계의 7세 아이들 가운데 65%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세계경제포럼 2016년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이라는데, 일하는 판을 내가 스스로 짜보거나 바꾸는 방법은 없는 걸까.

홍진아 선샤인콜렉티브 대표(36)는 이런 고민을 직접 실행에 옮긴 이다. 그는 2017년 두 곳의 회사에 소속을 두고 유연하게 일하는 실험을 했다. ‘엔(N)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란 뜻의 ‘프로엔(N)잡러’란 말을 만들고,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화·수·금 3일은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 ‘빠띠’에서 콘텐츠 매니저 겸 캠페인 기획자로 일했다. 월·목 2일은 조직 문화를 연구하는 경영컨설팅 회사 ‘진저티 프로젝트’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본업 외의 사이드프로젝트도 있다. 여성혐오에 반대하며 관련 ‘굿즈’를 만들고 수익금 일부를 여성단체에 기부했던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 페미니즘·LGBT·평등·장애·공존·어린이 등을 주제로 일상을 바꾸는 각종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소셜 투자 계모임 ‘디모스’ 등이다.

그의 실험은 이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시도로 확장했다. 2017년 2030 여성 기획자들이 모여 교육을 받고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를 만든 데 이어 지난해 가을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랩 ‘선샤인콜렉티브’를 설립했다. 유료회원제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소셜 벤처기업으로 오는 4월부터 서비스를 본격 시작한다.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신문사에서 그를 만났다. 물었다. 여성들의 ‘지속가능한 일’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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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래를 말하는데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돼?

―안녕! 사실 ‘엔(N)잡러 홍진아’가 나는 더 익숙한데…어쩌다 그만두고 ‘선샤인콜렉티브’란 회사를 만든 거야?

음…문제의식이 계속 있었어. 처음 입사한 곳에 여자가 더 많았거든. 그런데 ‘장’의 자리엔 꼭 남자들이 있는 거야. “왜?”란 고민을 한 거지. 나는 기획자로 무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 무대에 설 연사를 섭외할 때 늘 남녀비율을 고심해. 그런데 너무 많은 콘퍼런스나 포럼들이 (당연한 듯) 모든 연사를 남자로 섭외하는 거야. 그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더라고.

“왜 꼭 남자 8∼9명에 여자 1∼2명이 끼어있는 식이지?”

이런 걸 문제라고 생각한 게 출발점이었어.

홍진아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11월 열린 한 북토크 자리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일을 소개하며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여성 연사가 한 명도 없는 걸 보고 놀라, 동료 여성들이 앞에 서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존재는 가려지거나 극히 미미할 것이란 위기의식은, 지금의 그를 만든 동력이 됐다.

―사실 취재는 아니고 순수한 호기심에 참석한 자리였는데ㅎㅎ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런 기획(‘판을 바꾸는 언니들’)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어. 그리고 너를 꼭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도 생각했고.

난 아직도 잊히지 않는 밤이 있어. 2017년 초에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한 발표회가 있었거든. 그 행사 포스터에 적힌 (연사의) 이름을 일일이 인터넷으로 찾아본 날이야. (설마 했는데) 사회자를 포함해 무대에 오르는 모든 사람이 남자더라고.

“앞으로 올 세상이 어떨지 논의해봅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여자가 1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주제를 조금 포괄적으로 넓혀서라도 (어떻게든) 여성 연사를 찾았어야 한다고 난 생각해. (그런 고민이 없어서) 굉장히 게으른 기획이라고도 느꼈어. 그 날 밤이 내가 각성하게 된 순간이야. 여성들이 연사로 설 수 있는 무대를 내가 만들어봐야겠다고, 그때 결심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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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여성 기획자들을 연결하는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 프로젝트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거야?

응 그렇지ㅎㅎ 내 주변의 실력 있는 여성 실무자들을 연사로 세우고, 기획에 관심 있는 20대나 사회 초년생들을 만나게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 내가 20대 중반에 멘토링 강연을 들으면 대부분 40대 이상인, 굉장히 성공한 여성들이 나오곤 했어. 물론 만나면 가슴이 두근두근댔지만 집에 오는 길은 허무하더라고. ‘저런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하는 거야?’란 생각이 들었던 거지. 이런 의도로 시작하게 된 거야.

‘내가 지금 하는 고민을 5∼8년 정도 먼저 했던 사람을 만나게 하자!’

―반응은 어땠어?

처음엔 30대 기획자 4명을 섭외했고, 20대 기획자 12명을 만나 수업을 했어. 반응? 되게 좋았지∼ㅎㅎ 그 12명의 기획자가 별도로 ‘획기적인 여자들’이란 모임을 만들어 지금도 활동하고 있거든. 일하는 여성들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선배나 동료가 없다’며 외롭다고 느낄 수 있잖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함께 일하고 고민하는 여성 동료들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그렇게 (여성들을) 연결한 경험이 영향을 미쳐 ‘선샤인콜렉티브’란 회사를 만들게 된 거야. 일하는 여성들을 연결해 일터 밖의 동료를 만드는 것, 그걸 통해 일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취지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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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 곁에 있는 여성 동료들의 전문성을 발견할 거야

2016년 미국 뉴욕에 처음 문을 연 ‘더 윙’은 여성 전용 공유사무실이자 여성들이 모여 토론하고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사교의 공간이다. 회원들의 평균 나이는 35세다. 이들은 여성이 모여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여성을 위한 포럼과 강연을 연다. 파티나 취미프로그램도 있다. “‘선샤인콜렉티브’는 ‘더 윙’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홍진아는 말했다.

―‘선샤인콜렉티브’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진행할 계획이야?

여성들이 모여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여러 형태로 실험해보는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4월부터 2030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인 ‘빌라 선샤인’ 멤버십 제도를 시작하는데, 이 멤버십에 가입하면 전담 노무사와 변호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종합소득세 신고나 연말정산 기간에 일하는 여성을 도울 수 있는 여성 세무사나 회계사도 찾고 있어. 여성에게 필요한 법률이나 제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야.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소셜 클럽’이나 ‘타운홀’ 형식의 미팅도 열 예정이고. 여성이기에 경험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나 자신이 주체가 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공론장이랄까. 일하는 여성들에게 필요한 뉴스레터나 미디어 콘텐츠도 만들 에정이고.

앞서 같은 길을 걸어간 선배들이 설령 많지는 않더라도 지금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여성 동료들을 찾아내는 것, 그 연결을 통해 여성이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보는 것, 그가 ‘선샤인콜렉티브’를 만든 이유이자 목표다.

“성공한 여성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동료의 전문성을 발견하고 싶어.”

―우리가 보고 자란 풍경 속에는 사실 ‘대표’의 자리에 여성이 거의 없잖아. 어쩌다 한 명 나오면 ‘여풍’이 분다고 어찌나 호들갑을 떠는지ㅎㅎ 내가 지난해 11월, 모교인 고등학교에 진로특강을 간 적이 있는데 어떤 여학생이 손을 들고 묻더라고. “여기자는 결혼하고 출산해도 계속 일 할 수 있어요?” 나 사실 그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어. “회사마다 달라요. 확답은 못 주겠어요”하고 얼버무렸지.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어. 조직 내 (고위직의) 남녀비율을 맞춰 나가는 일이 바로 우리 세대의 숙제겠구나 싶더라고.

나도 사실 당장 뭔가가 바뀔 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할 수 있는) 여러 조치를 (모두) 해봐야 (결국엔) 판이 바뀌는 것 같아. 이런 글도 본 적이 있어. “여자를 (발표자로) 세워봤더니 다들 떨면서 이야기를 잘 못 하더라”고. 하지만 그런 평가는 일단 (남녀비율을) 5대5로 만들고 난 뒤에 능력의 차이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예를 들어 8명의 남자 연사 중에도 준비를 제대로 안 해온 1∼2명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 여자에겐 달랑 한두 자리만 주고 나서 “능력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 성급한 일반화 아닐까.

(무대에 서는) 여성의 수를 늘리는 역할을 우리 세대가, 그리고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

쉬운 일은 아니다. 여성인재 ‘풀’(pool)이 적기 때문에? 아니다. 대표성을 띠는 자리는 ‘당연히 내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굳이 필요하지도 않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겸양의 미덕’을 여성들 스스로 내재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가, 문화가 만든 산물이기도 하다. 홍진아는 여성 연사들을 무대 위로 올리는 시도를 할 때마다 “못하겠다”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대표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나의 자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지 않다”는 거다. 그는 “내가 (기획자로서 가진)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안을 한 건데 ‘잘 못 한다’고 답하면 그건 ‘기획자 홍진아’라는, 나 자신의 전문성까지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득을 하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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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들이 지속 가능하게 일을 하려면 어떤 점이 가장 필요할까?

음…결국은 의사결정권자의 자리에 여성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봐. 특히 지금 젊은 여성들은 (중장기적인) 커리어를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잖아. (동년배 남성보다) 더 높은 성취 기준을 부여받으며 일을 하면서도 ‘나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일해서 뭐하지’란 결론이 나오는 거지. 여성들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인재 유출이 일어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미국의 경영잡지 <패스트컴퍼니> 역시 밀레니얼 세대의 여성들이 직장에서 ‘번아웃’되고 퇴사를 선택하는 이유를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구조에서 찾았다. 매킨지 보고서를 보면, 입사할 때 여성 비율이 53%지만 중간 관리자급으로 가면 37%, 고위 간부급에선 26%로 떨어진다. 이런 구조 안에선 여성들에겐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기르는’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기대가 똑같이 적용된다. 여성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을 하다가 과부하를 경험하고, 결국엔 일터를 떠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과중한 역할 기대를 해소하거나 불투명한 커리어를 설계해 나가기 위한 정답을 아는 이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여성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된다고, 그는 믿는다.

#3. 여성들이여,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홍진아가 페미니스트임을 자각한, ‘페미니스트 모멘트’는 언제야?

2015년 5월 1일!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에서 처음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라고 적힌 에코백을 판매한 날이야. 100개가 40분 만에 품절됐어ㅎㅎ 며칠 뒤에 한 번 더 팔았는데 그땐 20분 만에 100개가 동났어. 사실 그 일을 직접 해보기 전엔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 스스로 그렇게 명명하는 게 촌스럽다고도 생각했거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거야. ‘아, 페미니즘이 내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구나’란 걸. 나 자체가 페미니스트란 걸 인정할 수 있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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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처럼 페미니즘 붐이 일어난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페미니스트’란 단어 자체가 마치 (소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 같았잖아.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자’ 이런 느낌? ㅎㅎ 불쾌한 상황에 부닥쳐도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건 아니지 않아?” 나도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ㅎㅎ 그 에코백은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된 거야?

개그맨 장동민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모델 한혜진씨한테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너무 싫다’고 당당하게 말을 한 적이 있잖아. 그런 말이 미디어에서 아무런 필터링도 없이 나간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분노했지. 친구도 너무 분하다며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는 구호를 티셔츠에 써서 입고 다니겠다는 거야. ‘그럼 같이해볼까?’해서 시작한 거지. 그때 나 혼자만 (그런 말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전국에 200명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 자신도 변하는 계기가 됐어.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가 2015년부터 2017년 말까지 판 페미니즘 관련 굿즈 개수만 3000개가량이다. 지난해부턴 굿즈 제작 대신 스탠드업 코미디쇼 ‘래프라우더’나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왜 안돼? 페스티벌’과 같은 행사를 기획했다. “전문가로서 여성들이 설 수 있는 판을 재밌게 만들어보자”란 생각에서 벌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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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 되게 야심 있는 여자구나?

―홍진아의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자유롭게 정의를 내려보면 어때?

‘내가 나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사실 되게 정치적인 거지. 정치는 ‘나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싸움을 가장 잘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 나란 사람은 여러 정체성으로 구성돼있지만 그중 가장 큰 부분은 결국 ‘여성’이란 점이니까. 사실 내가 (대체론) 원하는 점을 잘 말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원하는 바의 ‘끝’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

―‘끝’을 말하지 못한다는 게 어떤 의미야?

대학생 때 잠깐 연설 비서관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어. 미드 ‘웨스트윙’을 보다가ㅎㅎ 한번은 당시 여당 대변인실에서 일하던 선배가 학교에 왔는데 교수님이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나를 불러주신 거야. 그 자리에 나 혼자 여자더라고. 그 때 다른 친구들은 대변인이나 장관이 되고 싶다고 했어. 나는 “대통령 비서실의 연설 비서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그 선배가 날 보며 말하더라.

“진아야, 너는 되게 야심 있는 여자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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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다들 웃었는데 그 순간 알았지. 내가 원하는 걸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면, ‘야심’처럼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로 누군가는 표현한다는 걸.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쌓이면서 ‘내가 원하는 바의 최종 목표 지점을 이야기하면 안 돼. 권력이나 명예와 가까운 건 너무 드러내면 안 돼’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런데 페미니즘을 알고 나선, 여성들이 (그런 부분을) 욕망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쓰이는 수사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 그 뒤엔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알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이제는 여성은 무엇이든 욕망하고 성취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나다움.’ 홍진아가 꿈꾸는 새로운 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내 옆에 있는 여성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걸 볼 때, 그리고 그 여성들과 내가 연결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 자신도 “나답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서로에게 용기가 되는 존재”라고, 홍진아는 웃으며 덧붙였다.

취재=박다해 기자, 연출=황금비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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