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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필리핀 불법수출은 빙산의 일각…상반기 ‘2차 대란’ 경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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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해묵은 숙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경향신문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대부분은 일회용 플라스틱과 생활폐기물이다. 필리핀 미사미스 오리엔탈주 타고로안 시내 베르데 소코 소유의 쓰레기 하치장에 플라스틱 용기, 그물망 등 갖가지 폐플라스틱이 생활쓰레기와 섞여 방치돼 있다. 그린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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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노란색 플라스틱 뚜껑에 반쯤 떨어져나간 빛바랜 상표. 찢어진 포장 비닐 사이로 한글이 선명하게 새겨진 각종 생활쓰레기가 비어져 나왔다. 쓰레기는 태양열에 바짝 말랐다가 바람이 불면 잘게 부서져 사방에 흩날렸다. 열대성 소나기가 쏟아지면 인근 민가로 흘러가기도 했다. 지난해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된 한국산 쓰레기가 쌓여 있는 필리핀 민다나오섬 폐기물 하치장의 풍경이다.

이 폐기물은 한국에도 ‘쌍둥이’가 있다. 경북 의성에 높이만 10m가 넘는 7만t 규모의 ‘쓰레기산’과 무허가 사업자들이 한적한 교외에 투기한 불법 폐기물이 그것이다. 자리 잡은 공간은 다르지만 보내는 신호는 같다. 대한민국의 폐기물 처리체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뜻이다. 작년 4월 불거진 재활용 폐기물 대란에 이어 올 상반기에 ‘2차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온다.

■ 한국 쓰레기, 어쩌다 필리핀 갔나

한국산 쓰레기의 필리핀 불법 수출 사건은 지난해 11월 필리핀 관세청이 ‘합성 플라스틱 조각’으로 신고된 수입품 컨테이너에서 배터리, 전구, 빨대, 기저귀 등이 섞인 쓰레기 더미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필리핀 관세청은 현지 업체인 베르데소코필로부터 1400t의 쓰레기가 담긴 컨테이너 51개를 압류했다. 이 업체 소유 부지에선 5100t의 한국산 쓰레기가 추가로 발견됐다.

업계에선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왔다. 현상의 표면적 계기는 1년 전 중국의 폐플라스틱 수입 전면 금지 조치였다. 국내에서 갈 곳을 잃은 저질의 폐기물들이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동남아로 몰려가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의 ‘전 세계 폐플라스틱 수입규제 강화와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17년 전 세계 물량의 46%인 500만t 이상을 수입했지만 2018년에는 9월까지 6만7000t을 수입하는 데 그쳤다. 대신 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등으로 가는 물량이 급증했다. 이들 국가 중에서도 일부가 수입규제에 나서면서 필리핀으로 향하는 쓰레기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무역연구원이 집계한 한국의 폐플라스틱 수출입 통계에서도 중국에 수출된 폐기물 액수는 2017년 2510만달러(약 282억원)에서 2018년 175만달러(약 19억원)로 92%나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필리핀은 992%, 태국은 965% 수출액이 급증했다.

한국에서 생활쓰레기를 처리하려면 1t당 15만원이 드는 반면 필리핀에서는 4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송비를 더해도 내보낼 유인은 충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활용품 선별 업자에게 접근해 폐기물 처리를 대행해주는 ‘브로커’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일정 금액을 받고 쓰레기를 나라 안에선 무단 투기 혹은 불법 소각을 하고, 나라 밖까지 몰래 내다버린 것이다.

■ 한국의 폐기물 ‘세쌍둥이’

중국의 폐플라스틱 금수 후

규제 느슨한 동남아로 몰린

불법수출의 문제도 크지만

불법·방치 폐기물의 경우

업체가 시간 끌면 속수무책

‘세 쌍둥이’ 함께 들여다봐야


이번 사태로 한국에서 폐기물이 모두 소화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쓰레기가 나오면 수거업체에서 가져가 ‘재활용’ 혹은 ‘처리’로 운명이 나뉜다. 쓸모가 있으면 선별을 거쳐 재활용 되는 것이고, 처리가 어려운 것들은 태우거나 묻는다. 중국의 폐기물 수입금지로 촉발된 지난해 4월 폐기물 대란은 폐비닐이 문제였다. 이전엔 수거업체들이 돈이 되는 종이 등을 가져가면서 돈이 안되는 비닐류까지 가져갔는데, 중국의 수입금지 여파로 재활용품 가격이 폭락하다보니 비닐 수거를 거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불법 수출된 폐기물의 경우 처리 단계의 문제로, 작년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로 보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필리핀 불법 수출 폐기물은 ‘빙산의 일각’ ”이라면서 “불법 폐기물, 방치 폐기물, 불법 수출이라는 ‘세쌍둥이’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방치 폐기물은 허가받은 폐기물업체가 영업정지나 부도 등으로 처리 능력을 상실하고 해당 사업장에 폐기물을 쌓아놓은 것이다. 정부에선 업체가 처리를 못할 경우에 대비해 ‘방치 폐기물 처리 이행보증금’을 폐기물 허용 보관량에 맞춰 1.5배 쌓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허용량을 넘겨 계속 쌓아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지자체에서 제재를 해도 업체가 행정소송으로 대응하며 시간을 끌면 그만이다. 3년에 걸쳐 폐기물이 쌓인 경북 의성의 쓰레기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체가 돈을 챙긴 뒤에 문을 닫아버리면 정부에서 대신 비용을 들여 치울 수밖에 없다. 이미 이행보증금만으로는 감당이 안될 정도로 쓰레기는 불어난 뒤다.

불법 폐기물은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폐기물을 받아서 처리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애초에 돈만 받고 폐기물을 방치할 가능성이 커 세금으로 이를 처리해야 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폐기물 제도의 또 다른 허점은 폐기물 처리 전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관리하는 ‘올바로 시스템’의 한계다. 대규모 사업장이 아닌 이상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특히 폐플라스틱의 경우 ‘고물상’이라 불리는 영세업자들의 비중이 큰데, 올바로 시스템에 신고하지 않고 처리업체에 넘기면 이후 어떻게 처리됐는지 파악이 쉽지 않다. 불법 업체뿐만이 아니라 허가 업체라도 나쁜 마음을 먹으면 이러한 ‘무자료’ 폐기물을 받아서 쌓을 수 있는 셈이다.

불법 수출은 신고만 하면 되는 허점을 이용했다.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 및 그 처리에 관한 법률’을 보면 폐플라스틱 등 폐합성고분자화합물은 수출입 시 신고만 하면 되는 폐기물이다. 컨테이너 앞에는 플라스틱 원료를 쌓고 뒤에는 쓰레기를 싣는 일명 ‘커튼치기’ 등 다양한 불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물질의 비율 기준이 없어 수출업체와 수입업체가 짜고 플라스틱이 일부 들었으니 쓰레기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가 논란이 되자 현지 업체는 언론에 e메일을 보내 이와 비슷한 논리를 폈다.

홍수열 소장은 “보관량을 넘겨 폐기물을 받을 경우 공권력의 감독·집행 권한을 강화하고, 올바로 시스템에 입출력 처리량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전반적으로 행정력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면서 “불법 수출도 이물질 기준 설정 등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지난해 11월 경북 의성군 단밀면 한 폐기물 처리장에 쓰레기가 방치되고 있다(위). 지난해 8월 부산 대저동 공항 인근 농지에도 쓰레기가 쌓여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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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지금 폐기물 문제가 터졌을까

처리체계 총체적인 위기로

불법·방치 폐기물도 ‘문제’


폐기물 문제는 해묵은 숙제였지만 그동안은 국내 폐기물 관리체계 안에서 어떻게든 처리가 돼왔다. 몇 년 전까지 고유가가 이어지면서 화석연료 대체 수단으로 고형연료(SRF·폐기물에서 가연성 물질을 걸러내 만드는 연료)가 각광받는 등 산업계의 재활용 수요가 있었고, 중국이 전 세계 폐기물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유가는 저점을 찍었고, 중국은 폐기물 수입을 막았다. 미세먼지도 폐기물 처리 문제를 악화시킨 요인이다. SRF를 태우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발생하다보니 SRF가 미세먼지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됐다. 결국 갈 곳을 잃은 쓰레기들이 최근 여기저기서 비어져 나온 결과 불법 폐기물 수출이라는 ‘나라 망신’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방치·불법 폐기물 대책’을 내놓고 대응에 나서는 중이다. 하지만 관리·감독이 강화될 경우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단기적으로 무단 투기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1차 폐기물 대란이 집 앞에서 발생했다면, 2차 폐기물 대란은 서울 교외 도로변에 쓰레기가 쌓여가는 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실제 경기도는 지난해 실태조사를 벌여 66만t의 불법·방치 폐기물을 확인했는데, 발견 지역은 화성, 의정부, 포천 등지의 외곽이었다.

폐기물을 소각하는 데는 1t당 25만원 정도가 든다. 전국에 산재한 불법 폐기물을 모두 치우려면 수천억원이 소요될 가능성도 있다. 경기도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업체에서 폐업을 해버리면 결국 환경부·지자체가 함께 처리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면서 “최근 정부에서 행정대집행 수요조사를 해 협의하고 있는데 모두 처리하는 데 몇 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홍수열 소장은 “현재 전국에 불법·방치 폐기물이 100만~200만t으로 추산되는데 턱없이 부족한 폐기물 처리 용량을 늘리지 않으면 올 상반기에 재활용 대란이 재발할 수도 있다”면서 “공식 통계로 반영이 안되는 흐름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거쳐 국내 폐기물 처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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