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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말글살이] 손주 / 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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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하수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요즘은 명절이 다가오면 먹는 것, 교통편 등의 화제 못지않게 ‘말’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심심찮게 오간다. 젊은 세대가 손윗세대로부터 결혼이나 취업 이야기 듣기를 몹시 싫어한다든지, 여성의 인권과 관련된 도련님 같은 호칭이 타당한지 등 말이다. 그만큼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점점 예민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성인들의 언어적 인권이 중요하듯이 어린이들을 이르는 말도 언어 감수성을 가지고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7~8년 전엔가 ‘손자’라는 말 외에 ‘손주’라는 말도 표준어로 인정을 받았다. 원래 ‘손주’는 ‘손자’라는 말의 비표준형으로 생각되어서 표준어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실제 언어생활에서 ‘손자’는 자녀의 아들만을 가리키는 데 반해 ‘손주’는 자녀의 아들딸 모두를 가리킨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원래의 표준형 ‘손자’는 마치 가부장적인 단어처럼, 뒤늦게 인정받은 ‘손주’는 마치 성 평등을 암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떻든 앞으로는 되도록 ‘손주’라는 말을 써서 성별에 대한 여러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그러나 이렇게 단어 하나 정리한다고 해서 저절로 성 평등 사회에 다가서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인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보통 첫 손주가 남자아이면 ‘우리 집 장손입니다’ 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앞으로는 여자아이가 맏이로 태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표현을 하면 어떨까? 이제는 굳이 남자만 장손이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 또 요즘의 ‘장손’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추어주는 말일 뿐 이렇다 할 실익이 없는 예우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족 내부에서부터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게 대하는 기풍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수사적으로 사용해봄직하다. 낡은 전통에서 해방되려면 분명한 ‘의식’과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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