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성범죄 가해자로 잇따라 지목돼 공식 활동이 중단된 영화감독 김기덕의 영화가 일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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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성범죄 가해자로 잇따라 지목돼 공식 활동이 중단된 영화감독 김기덕(59)의 영화가 일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개막작 선정 취소를 요구하는 해시태그 운동이 일고 있으며, 여성단체는 개막작 선정에 항의하는 서한을 영화제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일본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는 지난 8일 홈페이지를 통해 김기덕의 23번째 장편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이 개막작에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은 다양한 인물이 퇴역한 군함을 타고 여행하던 중 미지에서 여러 비극적 사건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장근석, 안성기, 이성재, 류승범, 성기윤, 후지이 미나, 오다기리 조 등 한국과 일본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2월 베를린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파노라마 스페셜 섹션에 초청돼 이미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김 감독은 여배우 성폭력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였다. 세계적인 미투 운동 속에 김기덕의 영화 초청이 부적절했다는 비난이 일자, 영화제 측은 미투 운동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김기덕은 이후 여배우들로부터 성범죄 가해자로 잇따라 지목돼 공식 활동을 중단했고, 신작 개봉도 미뤄졌다.
이번 영화제가 김기덕의 ‘복귀 무대가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면서 반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0일 SNS에서는 ‘#김기덕_개막작_취소하라’라는 해시태그가 줄이어 올라왔다. 일본어로도 번역된 이 해시태그는 ‘#그건_연출이_아니라_성폭력입니다’ ‘#STOP_영화계_내_인권침해’ ‘#MeToo’ 해시태그와 함께 수백 건 공유됐다.
지난해 3월 방송된 MBC <PD 수첩> ‘영화 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편의 한 장면. 방송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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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민우회)는 개막작 선정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지난 9일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관계자 여러분께: 김기덕 감독 영화 개막작 초청에 부쳐’라는 제목의 항의서한을 공개했다.
민우회는 “오늘(9일) 기사를 통해 3월 7일 열리는 제29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이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이 영화는 지난해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당시에도 세계적인 미투운동의 흐름과 맞지 않은 내용으로 냉담한 평가를 받았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촬영과정에서 ‘연기지도’라는 어이없는 폭행에 대해 벌금형을 받았음에도 영화제 기간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변명과 억울함을 호소하여 비판받은 바 있다”고 썼다.
이어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개봉이 취소된 것”이라며 “귀 영화제는 2017년 한국에서는 ‘남배우A 성폭력사건’으로 알려진 가해자가 주연인 영화를 초청한 바 있다. 그런데 또 다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은 가해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고 밝혔다.
민우회는 끝으로 “세계적인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영화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성폭력, 인권침해의 문제에 침묵하고 가해자들을 계속 지원하거나 초청하고, 캐스팅하기 때문이다.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홈페이지를 보니 ‘세계에서 제일 재미있는 영화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영화계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외면하는 것은 전혀 재미있지 않다. 김기덕 감독 영화 개막작 초청을 취소해달라. 영화예술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부당한 현실을 묵과하지 말고,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해달라”고 호소했다.
민우회 측은 해당 내용을 번역해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주최 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김기덕은 MBC <PD수첩>을 통해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배우를 무고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지난해 12월 <PD수첩>과 여배우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는 1990년부터 일본 훗카이도 유바리시에서 시작됐다. 오는 3월7일 개막해 10일 폐막한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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