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 추도사…인간에게 불 가져다준 '아틀라스'에 비유
10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영결식'에서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슬픔에 잠겨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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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고인은 떠났지만, 새로운 임지는 ‘하늘’이 될 것입니다. 향후 응급의료헬기 표면에 고인의 이름을 새겨넣고, ‘콜 사인’은 아틀라스(Atlas)로 하겠습니다. 이제는 선생이 위태롭게 짊어졌던 짐을 우리가 함께 받칠 것입니다."(이국종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
국내 응급의료체계 확립에 헌신하다 숨진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엄수됐다. 고인은 설 연휴 근무 중이던 지난 4일 오후 6시쯤 병원 집무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인은 관상동맥경화에 따른 급성심장사였다.
유족과 의료계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한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해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과 이국종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의 추도사 등으로 진행됐다.
이 교수는 추도사에서 "고인은 응급의료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버려진 섹터를 짊어지고 끌고 나가려는 자신의 운명과 ‘응급의료 체계를 무의미하게 남겨 놓을 수 없다’는 정의 추구를 화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산화시켰다”며 “하지만 응급의료 체계 개선은 부침을 반복해 왔고 의료계 내부의 반발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정책의 뒤틀림들로 인해 고인의 ‘버퍼’(완충력)는 끊임없이 소진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람이든 국가든 진정한 내공은 위기 때 발현되기 마련"이라며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라는 세간의 진리를 무시하고 오히려 물러설 자리가 없는 사지로 뛰어들어 피투성이 싸움을 하면서도 다시 모든 것을 명료하게 정리해 내는 선생님께 항상 경외감을 느껴왔다"고 전했다.
이어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을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형제인 아틀라스에 비유했다. 그는 아틀라스가 지구의 서쪽 끝에서 손과 머리로 하늘을 떠받치면서 본인에게 형벌과도 같은 상황을 견디고 있는 것처럼 윤 센터장이 한국의 응급의료를 떠받쳐왔다고 말했다.
이날 윤 센터장의 장남 윤형찬 군은 유가족 대표로 추도사를 했다. 윤군은 “이번 일을 겪으며 아버지가 이루고자 한 일과, 이를 위해 함께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을 알게 됐다”며 “아버지가 가족에게 늘 미안함을 가진 걸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진심으로 이해한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와 모형 비행기를 만들어 함께 날리던 날들이 그리워질 거 같다”며 “아버지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 준 국민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응급환자가 제 때 제대로 치료받는 아버지의 평생의 꿈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영결식이 끝난 뒤 유족들은 윤 센터장의 영정을 들고 고인이 근무했던 병원 행정동을 한 바퀴 돈 뒤 경기도 포천의 장지로 향했다. 정부는 윤 센터장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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