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정보 빼돌리기, 사장 사칭, 가짜 계약서 등 수법 다양
관악경찰서, 업무상횡령·업무방해 기소 의견 검찰 송치 예정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해 5월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아무개(51)씨는 깜짝 놀랐다. 강남구 대치동 ‘ㅇ빌라’ 앞으로 되어 있어야 할 27개 계약서 가운데 21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부동산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는 장아무개(58)씨를 불렀다. ‘계약서가 어디 있느냐’는 이씨의 질문에 장씨는 “죄송하다. 제 차에 넣어뒀다. 가져오겠다”며 주차장으로 떠났다. 하지만 2분 거리에 있는 주차장에 간 장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봤으나 계속 통화중이었다. 이에 수상하다고 여긴 이씨는 직접 주차장으로 장씨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장씨는 건물 임대인에게 전화를 걸어 “204호, 205호, 305호, 601호는 사모님이 부동산 없이 직거래했다고 대답해달라”며 입을 맞추고 있었다. 사장인 이씨 몰래 부동산 직원 장씨가 건물을 계약하고 중개수수료를 편취한 것이다.
이씨가 뒤늦게 따져보니 2014년 12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이런 피해를 59차례 당했고, 피해액이 2억원에 이르렀다. 추가 피해 사실도 잇따라 나와 고소하지 못한 건이 50여건 남아 있다고도 했다. “지금도 계속 피해 사실들이 나오고 있어요.” 지난달 29일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난 이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장씨의 수법은 신출귀몰했다. 장씨는 부동산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첩 외에 개인 수첩을 만들어둔 뒤 거기에 부동산 손님들에 대한 온갖 정보를 적어뒀다. 이씨가 상담하는 동안 손님의 이름, 전화번호, 상담 내용 등을 적어두는 식이었다. 이씨가 직접 보여준 장씨의 수첩에는 손님들에 대한 기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꽃집, 17평 상가매물, 1500만원 보증금 1000만원으로 조절될 듯’ ‘삼성동 단독, 1층 테라스 공간, 보증금 5000에 권리금 8000∼9000, 저녁 이자카야 스타일. 010-****-**** 사모, 010-****-**** 사장’…. 메모는 구체적이었다. 장씨는 이렇게 수첩 한권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갖고 사장 몰래 손님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미리 이씨의 도장을 찍어둔 계약서를 갖고 부동산 계약을 체결했다. 중개수수료는 장씨의 몫이었다.
장씨는 아예 사장인 척 행세하기도 했다. 대치동에 사는 강아무개씨는 장씨를 부동산 사장으로 믿고 건물을 맡겼다가 나중에야 장씨가 사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씨는 2016년 10월께 대치동에 있는 빌라를 월세로 내놓기 위해 이씨의 부동산을 찾았다. 이씨는 자리에 없었고, 장씨가 상담을 해줬다. 이런 식으로 두차례 상담이 이뤄졌다. 세번째 방문 때, 강씨는 진짜 사장인 이씨를 만날 수 있었다. 강씨는 “이 사장님께서 본인이 사장이라고 소개하셔서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씨는 부동산 매물 거래 사이트에 사장 행세를 하며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두기도 했다. 그렇게 받은 연락은 진짜 사장인 이씨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장씨는 휴대전화를 2개 사용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장씨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부동산계약서를 직접 위조해 자신의 이동식저장장치(USB)에 갖고 다니기도 했다. 이씨가 부동산 계약이 진행되는 사실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장씨는 이 과정에서 일본인 임차인들과의 계약을 위해 일본어로 된 계약서도 따로 만들었다. 일본인 임차인들은 대체로 기업 주재원들이 많은데, 이들은 단기간에 많은 돈을 주고 계약을 하기 때문에 임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의 부동산에서는 이들을 위해 따로 일본어로 된 계약서를 사용하지 않았다. 장씨가 중개수수료 편취를 위해 따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씨는 이런 사실을 알고서도 장씨를 고소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6년을 친언니로 여겨온 그를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장씨는 이런 행동이 발각될 때마다 힘든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하고, 종교인으로서 죄를 뉘우친다며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빌었다고 한다. 이씨의 휴대전화에는 장씨가 ‘숨기는 것 없어요’ ‘제가 정말 기억이 안 나요’ ‘사장님 죄송해요’ ‘이거 말고 제가 계약서 가지고 있는 게 없는데 정말로 차라리 저한테 가르쳐주세요’라거나 ‘저의 잘못 때문에 마음에 상처 드린 것 너무 죄송해요’라고 말하는 등 용서를 빌거나 변명을 하는 문자메시지가 가득했다. 장씨는 지난해 5월28일 주차장에서 임대인과 입을 맞추다 발각됐을 때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실확인서까지 썼다.
지난해 6월까지도 “죄송하다”며 용서를 빌던 장씨는 그러나 7월부터 사무실에 무단으로 결근하기 시작했다. 결국 7월24일 이씨가 장씨를 고소하자 변호사를 선임하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사실확인서도 이씨와 또 다른 부동산 직원인 천아무개씨가 자신을 감금하고 협박해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경기 안양 동안경찰서에서 서울 수서경찰서, 그리고 다시 관악경찰서로 넘어갔다. 그러는 동안 피해자 이씨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과거 장씨가 일했던 부동산 사장 2명을 만난 뒤 배신감은 더 커졌다. 부동산 사장들은 “장씨가 잘못을 저지른 뒤에는 무릎을 꿇고 빌면서 죄송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다시 또 같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라고 입을 모았다. 여성 혼자 운영하는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언니 행세를 한 뒤 사기를 치는 수법도 똑같았다.
수사 과정에서 고통은 더 심해졌다. “요즘은 마음에 병이 들어, 병원 치료까지 받고 있어요.” 이씨는 장씨와의 대질신문과 경찰 조사 과정을 겪으면서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잘못을 빌던 장씨가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을 보며 배신감과 답답함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반복된다고도 했다. 법을 잘 모르다 보니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걱정도 많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이, 부디 수사를 엄정하게 해주셔서 장씨의 죄를 다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관악경찰서는 8일 장씨를 업무상횡령·업무방해 일부 기소 의견과 공인중개사법 위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