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망언에 미소로 응수, 日지진 때는 모금 독려
모두 기부하고 마지막에 160만원 남아
"김복동 할머니, 나비 되어 훨훨 날으소서."
29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영정 사진 속 김복동(93) 할머니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서도 매번 미소를 지었다.
29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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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망언을 할 때도 할머니는 온 얼굴에 미소를 잔뜩 머금고 ‘여러분, 세계에 나비가 날고 있어요. 이 늙은 나비도 날고 다닙니다’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평화 세상에서 할머니가 훨훨 날 수 있도록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말이다.
‘시민장(葬)’으로 치러진 김 할머니 장례에는 평일임에도 시민들의 조문이 끊이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빈소를 찾은 고교생 김지원(17)양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아픔이 치유됐으면 한다"고 했다. 대학생 김모(22)씨도 "김복동 할머니는 언제나 제일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말씀하셨던 분"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각계각층 추모행렬도 이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 시장, 대한불교조계종, 동북아역사재단, 한베평화재단, 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보임, 수원평화나비 등 이름으로 각지에서 조화가 도착했다.
2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은 배우 나문희씨가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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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에 출연한 배우 나문희(78)씨는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빈소를 찾았다. 그는 "너무 고생하셨으니까 이제는 날개 달고 편한 곳, 좋은 곳에 가시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장례식장으로 조화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할머니께서는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고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다"며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자 23분을 위해 도리를 다하겠다"고 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박주민·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도 빈소를 찾았다.
김 할머니는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해오다 지난 28일 오후 10시 41분 별세했다. 김 할머니는 숨지기 전날 "일본 정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 나를 대신해 재일조선학교 아이들 지원도 끝까지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임종을 지킨 윤 대표는 "김 할머니는 이마에 진땀이 맺힐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김 할머니는 1940년 만 14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됐다고 증언했고, 이후 중국‧홍콩‧싱가포르 등으로 끌려 다니며 고초를 겪었다. 그 이후의 삶은 일본군 만행을 알리는 데 바쳤다. 19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UN세계인권대회 등 세계 곳곳에 피해를 증언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김 할머니는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됐다.
김 할머니는 재일조선학교 학생과 분쟁지역 아동, 전쟁 중 성폭력 피해 여성 등을 지원하는 기부활동에도 앞장섰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우리는 일본 정부와 싸우는 것이지 일본 시민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며 피해자 돕기 모금을 제안하고 1호 기부를 했다. 김 할머니는 그간 2억원이 넘는 돈을 기부했다. 마지막 남은 재산은 160만원으로 전해졌다.
발인은 내달 1일이다.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火葬)을 거친 뒤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된다.
[고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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