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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한순구의일상의경제학] 돈을 벌 때와 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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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버는 과정에서 생산과 분배 분리해야 / 최저임금 등 취지 좋지만 효율성 떨어져

세계일보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이 있다. 사전에 보면 돈을 벌 때는 천한 일이라도 하면서 벌고 쓸 때는 떳떳하고 보람 있게 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이 속담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보면 돈을 벌 때와 돈을 쓸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돈을 쓸 때 보면 예의 바르고 점잖은 사람이라도 그 돈을 버는 과정에서는 예의나 체면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경제학에도 이와 상당히 부합하는 이론이 있는데 생산과 분배를 분리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위 속담에 비유해 해석해 보면 저소득층의 사람을 도와주는 분배에 관한 일은 생산을 해 돈을 버는 과정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의미이다. 가령 저임금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는 어떤 기업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의학계의 연구 결과 매일 사과를 하나씩 먹는 것이 건강에 아주 좋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하자. 그래서 정부는 기업에 매일 점심에 사과 하나를 근로자에게 제공할 것을 법으로 정했다고 해 보자.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의 건강을 위해서 사과를 제공하는 것은 아주 좋은 취지의 행동이므로 이런 정부의 결정을 반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제학 입장에서 보면 이는 저임금 근로자를 돕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우선 근로자 중에는 사과가 문제가 아니라 쌀이나 옷을 살 돈이 부족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기업이 사과를 주기보다는 사과를 살 수 있는 돈을 준다면 훨씬 행복을 느낄 것이다. 사과를 살 수도 있지만 사과보다 더 필요한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갑자기 매일 사과를 구매해 보관했다가 근로자에게 줘야 한다면 관리할 인력이 추가로 고용돼야 하고 냉장 설비 등이 필요할 것이며 겨우 수백 개의 사과를 도매시장에서 구입하려면 구매 가격도 높아질 것이다. 또 법이 하루도 빠지지 말고 사과를 제공하도록 규정한다면 태풍으로 사과의 수확량이 떨어진 시기에 사과를 구하기가 힘들 것이고, 실제로 사과와 건강에 비슷한 효과가 있는 오렌지의 가격이 낮더라도 반드시 사과를 구매해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에 비용이 높다. 대신 사과를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을 돈으로 근로자에게 지급하면 근로자들은 사과의 가격이 높으면 다른 과일을 구매할 수도 있고, 기업은 사과의 구매와 보관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자들은 기업이 생산을 해 돈을 버는 과정에서 다른 일을 걱정하도록 정부가 법을 정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업에 마음껏 생산해 돈을 벌도록 한 후 세금으로 돈을 받아 근로자에게 주는 것이 비용은 줄고 효과는 커지기 때문이다. 주52시간 근무와 같은 새로운 제도는 근로자의 근무 여건을 향상시키는 좋은 취지가 있지만, 기업과 근로자가 생산과정에서 자유로운 협약을 할 기회가 줄어들게 돼 고비용이면서 저효용의 복지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의 상승도 비슷한 원리이다. 이런 방법에 비해 정부가 세금을 거두고 그 세금으로 근로자나 저소득층을 돕도록 하는 방법이 언제나 비용은 낮아지고 효과는 커진다는 경제학의 이론을 정치인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경제학자의 책임이 오히려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순구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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