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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기고] 미·중 무역분쟁은 지재권 보호의 세 번째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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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중·일 3국 특허청장회의 참석차 지난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성도인 우한에 다녀왔다. 우리에게는 양쯔강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장강(長江)을 바라보며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당연한 이치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쩌면 지금 우리는 세계 지식재산권 시스템의 구체제를 밀어내는 거대한 새 물결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중 무역분쟁 여파 속에서 많은 국가가 경쟁적으로 취하고 있는 지재권 보호 강화 조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재권 보호 강화를 향한 중국 당국의 속도와 분위기는 예상보다 빠르고 엄중해 보였다. 3국 특허청장회의를 주관한 중국 특허청장은 물론이고 이번 방중 기간에 만났던 후베이성의 당서기와 성장, 상하이시 부시장, 우한대학교 총장 등 중국의 지도층은 지재권 보호의 중요성을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었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11월 특허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천명하자마자, 중국 국무원은 곧바로 개정 특허법안을 통과시켰다. 예정대로 올해 중에 우리의 국회 격인 전인대의 절차가 마무리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비롯한 특허권자의 획기적인 권리 강화 내용을 담은 새로운 특허법이 중국에서 시행될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의 핵심 고리였던 지재권 보호에 대해 중국이 정공법으로 헤쳐 나갈 것임을 천명하는 의지로 읽혔다.

돌이켜 보면 지재권 보호 강화의 거대한 물결이 일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 첫 번째 물결은 지재권 최초의 국제조약인 '산업재산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1883)과 관련한 것이었다. 당시는 국내 수요를 훌쩍 넘어버린 제조업의 생산력이 국제무역을 가속화시키고, 이러한 무역을 뒷받침하기 위한 만국박람회가 앞다투어 개최되던 시기였다. 박람회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좋은 마당이었지만, 전시품을 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 사람들이 무임승차로 짝퉁을 만드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화가 난 발명가와 기업가들은 1872년 빈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 참여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무역 확대를 가로막는 난처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10여 년의 협상을 거쳐 만든 것이 국제적 지재권 보호의 기본적 장치를 최초로 담은 파리협약이었다.

두 번째 물결은 파리협약 후 약 100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서구 국가들이 향유하던 통상 주도권이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제조업 역량을 키우기 시작한 아시아 국가들에 잠식당하기 시작한 때였다.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는 요소인 지재권에 주목했고, 지재권 보호 수준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이를 무역 규범에 편입하려 하였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함께 1993년에 마무리된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일명 TRIPs 협정)'은 이 두 번째 물결의 종착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미·중 무역분쟁이 지재권에 관한 세계사적 흐름의 세 번째 물결을 예고하는 사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앞과 동일하게 반복되는 패턴 때문이다. 비슷한 제품을 더 싸게 '제조'할 수 있는 경쟁자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기 마련이고, 이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 나은 제품을 창조할 수 있는 '혁신'과, 그 '혁신의 성과'를 안정적으로 지켜줄 지재권이라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 장치는 '글로벌'하게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기도 해서, 경쟁의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지재권 보호의 강도와 범위는 높아지고 넓어지는 방향으로 진화가 진행돼 왔다.

우리의 대응도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해 12월 법 개정을 통해 사상 처음으로 지재권 분야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였고, 상표만 관장하던 특별사법경찰의 업무 범위를 특허, 디자인, 영업비밀까지 넓혔다. 4차 산업혁명과 지재권 환경의 변화가 가져올 파도를 넘고 나서야 혁신성장의 큰 바다로 항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박원주 특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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