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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대학들 '총강좌수 평가'에 불만 폭발 "교육부 예산갑질·간섭 더 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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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혁신지원 공청회'서 "시간강사 안 줄인 곳에 지원금"

참석 대학 "말로만 자율 존중"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세워진 나랍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대학 의견을 무시하는 교육부 행태를 보면 정반대로 가는 것 같습니다. 대학 의견 듣는다고 이 공청회를 열었지만, 저희가 제안한 의견이 무시될 것이라고 100% 확신합니다."

8일 오후 대전 유성구 한밭대에서 열린 '2019년 대학혁신지원사업 공청회'에서 한 대학 관계자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하자 수백 명이 일제히 박수 치며 호응했다.

이날 공청회는 교육부가 올해부터 2021년까지 전국 143개 4년제 대학에 국가 예산을 어떻게 지원할지 설명하는 자리였다. 대학 입장에선 교육부가 어떤 방식으로 예산을 배분하는지에 따라 수억~수십억원의 재정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관심이 컸다. 이날 교육부는 "올해는 추가 평가 없이 학생 수 등 산출식을 통해 대학에 지원금을 나눠주지만, 2020~2021년엔 예산 80%는 올해와 똑같이 지급하되 나머지 20%는 추가 평가를 해서 점수 높은 대학에 더 많이 주겠다"고 했다. 지난해 교육부 평가 상위권에 들기 위해 온 힘을 쏟은 대학들은 "또 평가를 준비해야 하느냐"고 허탈해했다.

특히 교육부가 20% 예산을 나누는 평가 지표에 '총강좌 수'를 넣겠다고 하자 대학들 반발이 컸다. 지난해 교육부가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는 '시간강사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자 많은 대학이 재정 부담이 크다며 강좌 수를 줄이고 시간강사를 감축했다. 그러자 교육부가 평가 지표에 '총강좌 수'를 넣어 시간강사를 못 줄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방청석의 대학 관계자들은 "학생 수는 주는데 '총강좌 수' 같은 지표를 기계적으로 지키기는 대단히 어렵다"며 "정부가 교육 내용이나 연구 역량을 평가해 대학이 잘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이런 식으로 평가하면 오히려 대학 여건을 악화시킨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가 "아직 결정된 게 없고, 구체적 지표는 5월에 최종 통보하겠다"고 하자 대학들은 더 황당해했다.

대학들은 "교육부가 예산 나눠주는 것을 무기로 대학에 갑질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간섭하는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고 했다. 교육부는 지난 10년간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엔 예산을 주지 않는 정책으로 '등록금 동결 정책'을 이끌어 왔다. 입시 정책이나 입학금 폐지 등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도 정부의 재정 지원과 연계해 대학들이 억지로 따라오게 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교육부는 말로는 대학 자율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재정 지원 사업 지표에 원하는 걸 넣고 '이거 안 지키면 돈 안 준다'고 대학을 압박해왔다"면서 "산업 구조와 노동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국 대학은 교육부 눈치만 봐야 하니, 어떻게 발전이 되겠느냐"고 했다.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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