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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자기주도학습, 사교육보다 성적향상 3배 효과… 학점·취업에도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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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VS 자기주도학습

6000명 추적 조사

사교육 1시간 받을 때 성적 평균 1.5%p 상승

혼자 학습 4.6%p 올라 나중에 월급도 더 많아

초등교때만 사교육 효과

학습 수준 낮을 땐 가르쳐주면 습득 빨라

중학교 때부터 역전 스스로 사고해야 발전

작년 대입 수능시험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서울 도봉구 선덕고 3학년 김지명(19)군일 겁니다. 김군은 어렵기로 소문났던 작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 중 한 명입니다. 다른 만점자 8명이 더 있지만, 그가 유독 화제가 된 이유가 있습니다. 김군은 서울 강북구 인수동 토박이에 추어탕집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12세 때 백혈병에 걸려 3년간 투병했던 아픔도 있지요. 게다가 김군은 초등학교 때 1년간 영어·수학학원을 다닌 걸 제외하면 학원에 다닌 적이 없답니다. 학교 수업과 인터넷 강의만을 벗 삼아 혼자 공부해 수능 만점을 받았다는 겁니다. 사교육이 필수가 된 시대에 김군 같은 학생의 소식이 단비처럼 반갑지만, 의문이 남습니다. 김군의 사례가 일반화될 수 있을까요. 그가 공부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천재였던 것 아닐까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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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공부해야 성적도 오르고 임금도 오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군의 사례는 예외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김군 스스로도 "아이큐 110에, 절대 천재는 아니다"라고 강조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김군의 만점을 뒷받침하는 학자들의 연구 사례가 있습니다. 사교육이 수능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한 가장 유명한 연구 중 하나는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의 연구보고서 '학업성취도, 진학 및 노동시장 성과에 대한 사교육의 효과 분석'입니다. 2010년 발간 당시 사교육과 자기주도학습 효과를 실증 데이터에 근거해 처음으로 비교·분석해 화제가 됐고, 매년 입시 철이면 인구에 회자되는 연구이기도 합니다. 작년 수능 이후에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이 논문을 소개한 글이 3000회 이상 공유되기도 했습니다. 김 교수는 2010년부터 이 주제에 천착해 여러 후속 연구를 내놓았습니다. 특히 김 교수 연구의 핵심은 사교육보다 자기주도학습, 즉 혼자서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게 수능 성적뿐 아니라 대학 성적과 향후 취업에도 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한국교육고용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김 교수가 추산한 결과를 보면 자기주도학습의 우수성이 수치로 드러납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04년부터 시작한 한국교육고용패널은 중학교 3학년부터 인문계·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까지 매년 6000명의 표본을 선정해 최대 10년까지 이들의 교육환경·성적·취업 등을 추적하는 조사입니다. 표본도 크고, 오랜 기간에 걸쳐 같은 표본을 추적 조사하기 때문에 데이터 신뢰성도 높습니다. 김 교수도 이 조사로 쌓인 원데이터를 활용해 사교육과 자기주도학습의 효과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사교육이 가장 집중된 수학 과목을 예로 들면, 고3 때 주당 사교육 시간이 1시간 많을 때 수능 수학 성적(백분위 기준)은 평균 1.5%포인트 상승한 반면, 혼자 1시간 더 공부하면 4.6%포인트까지 올랐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이 사교육보다 3배가량 효과가 더 좋았던 겁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혼자 공부하는 습관이 든 학생은 대학 진학과 취업에서도 더 우수한 실적을 보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받은 사교육은 대학 학점에 긍정적 영향이 거의 없었지만, 자기주도학습을 많이 한 학생들은 대학 학점이 높았습니다(혼자 하루 1시간 더 공부할수록 백분위 학점 1.8 상승). 취업 후에도 자기주도학습을 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평균 4%가량 더 많은 실질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성비' 낮은 사교육이 왜 살아남을까

물론 사교육의 효과가 아예 없다는 건 아닙니다. 강창희 중앙대 교수와 박윤수 KDI 연구위원이 사교육과 자기주도학습의 효과를 초등학교~고등학교 기간에 비교 연구한 결과, 초등학교 때는 월평균 100만원짜리 사교육을 받는 게 하루 1시간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었습니다. 사교육과 자기주도학습의 효과가 역전되는 건 중학교 때부터입니다. 특히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자기주도학습만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성적 향상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 두 학자의 결론입니다.

이런 결과가 직관과 위배되는 건 아닙니다. 학습 수준이 낮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수준에서는 당연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으니 사교육이 효과가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교과 수준이 더 높아지면 남이 가르쳐주는 걸 기계적으로 학습한 것보다 배운 것을 스스로 소화하는 시간을 가진 학생이 더 우수한 성적을 받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대학 성적과 임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대학교 수업, 또 회사에서 일 잘하는 법까지 사교육이 가르쳐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지난 10년간 세 사람 외에도 10여 건 이상의 관련 연구가 쏟아졌고 대부분 사교육보다는 자기주도학습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교육 시장에서 사교육의 위력은 막강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사람들이 사교육과 우수한 성적 사이의 인과관계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입니다. 보통 사교육을 가장 많이 받는 건 명문대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입니다. 이 학생들 대부분은 사교육이 없었어도 성적이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원래 우수한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사교육을 받고 좋은 성적으로 명문대에 진학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보면 마치 사교육 덕분에 이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생긴다는 지적입니다.

물론 사교육이 아예 효과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른바 '가성비', 즉 투입한 비용 대비 효율로 봤을 때 자기주도학습이 사교육보다 낫다는 거죠. 무엇보다 자기주도학습은 돈이 들지 않으니까요. 자식을 망치려면 물고기를 잡아주면 되고, 자식을 제대로 키우려면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유명한 격언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아이들의 사교육 문제로 고민해 본 부모들이 이 말을 몰라서 사교육을 시키는 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제나 아는 것보다 실천이 더 어려운 법이죠. 부모들 역시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은 자기주도학습을 해본 적이 있는가.'

[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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