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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안타까운 죽음들, ‘미투’와 퀴어소설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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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김윤식 황현산 허수경 등 별세

고은 하일지 등 ‘미투’ 관련해 재판

노벨문학상 중단, 미당문학상 폐지

국립문학관은 진통 끝에 은평으로



2018년은 문인들의 죽음이 잇따르면서 문단과 독자들이 큰 슬픔에 잠긴 한 해였다. 사회 전반을 뒤흔든 미투 물결에 원로 시인 고은 등이 연루되면서 재판으로 이어졌고, 노벨문학상도 관련자의 성추문 등으로 인해 수상을 한 해 건너뛰었다. 친일 문제로 비판 받아온 미당문학상이 중단되었고, 국립한국문학관은 서울 은평구로 부지를 확정하면서 본격적인 건립 준비에 들어갔다.

■ 아! 최인훈, 황현산, 허수경, 김윤식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7월23일 별세했다. 4·19 학생혁명의 해에 문예지에 발표되었고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된 <광장>은 분단과 이념 대립이라는 민족의 핵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민족문학의 특수성과 세계문학의 보편성을 아울러 획득한 문제작이었다. <광장>뿐만이 아니다. <회색인>과 <서유기>로 이어지는 관념과 환상의 해체 및 재구성을 통한 역사·현실과의 대결 의식, <총독의 소리>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통한 역사적·문학사적 맥락 탐구,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가 보여준 시적 희곡의 가능성, 그리고 최인훈 필생의 여정과 모색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적 전환기에 포개 놓은 대작 <화두>에 이르기까지 최인훈은 한국 문학에 흔치 않은 지성과 깊이를 보여준 작가였다.

소설에 최인훈이 있었다면, 문학사와 비평에는 김윤식이 있었다. 10월25일 별세한 김윤식은 일찍이 반공주의 이념의 감시와 억압 속에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연구서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를 첫 저서로 선보인 이래 백수십권에 이르는 단독 저서와 공저, 번역서 등을 내놓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염상섭 연구> <백철 연구> 같은 작가론저와 <한국현대문학비평사론> <일제말기 한국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 <내가 읽고 만난 일본> 등 문학사론저, <환각을 찾아서> <설렘과 황홀의 순간> <낯선 신을 찾아서> 같은 예술기행집, 그리고 숨지기 직전까지 놓지 않은 소설 현장비평 등의 작업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8월8일 별세한 황현산은 시 비평과 번역, 시사 및 문화 칼럼으로 문단 안팎에 열성적인 독자를 거느렸다. 비교적 늦게 평론을 시작한 그는 ‘미래파’로 대표되는 젊은 시인들의 실험적이며 도전적인 작업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해석하고 응원했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와 이론서는 그의 손을 거치면서 정본에 가까운 번역본을 얻었다. 신문과 잡지에 쓴 칼럼을 모은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와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은 문단의 경계를 넘어 일반 독자들에게도 적잖은 사랑을 받았다.

불과 이십대 중반 나이였던 1988년에 낸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1992년 독일로 떠나기 직전에 낸 두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등을 통해 나이답지 않게 농익은 정서와 어투로 단박에 한국 시의 중심으로 진입한 허수경이 그토록 사랑하던 모국어에서 멀리 떨어져 살다 숨졌다는 소식에 문우들과 독자들은 다투어 슬픔을 표현했다.

연초였던 1월16일에는 실험적 모더니스트 이승훈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11월3일에는 제주의 원로 시인 문충성이 별세했고, 9월13일에는 암 투병 중이던 소설가 최옥정이 이른 나이에 스러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미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 일순위로 꼽히던 필립 로스가 5월22일에 숨을 거두었고, 세계적인 무협지 작가 진융(김용)도 10월30일 94살을 일기로 세상을 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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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하일지 등 상대로 한 ‘미투’ 원로 시인 고은이 1990년대에 저지른 성추행을 고발한 최영미의 시 ‘괴물’이 계간지 <황해문화>에 실린 것은 지난해 겨울이었다.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작품이 해가 바뀌면서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투’ 물결 속에 새삼 관심사로 떠올랐다. 고은 시인은 처음에는 <한겨레>와 전화 통화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으나, 또 다른 성추행 의혹들이 불거지자 최영미 시인 등을 상대로 소송에 나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경마장 가는 길>의 작가 하일지도 자신이 교수로 있는 동덕여대에서 불거진 성폭력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유력 계간지 편집위원인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도 제자를 상대로 한 성폭행 혐의가 드러나 조사 중이다.

■ 노벨문학상과 미당문학상 스웨덴 한림원이 주관하는 노벨문학상 역시 심사위원의 남편이 연루된 성추문과 심사 결과 사전 누출 혐의 등으로 전쟁 중이던 1943년 이후 75년 만에 시상을 포기했다. 국내에서는 친일 문인 미당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을 운영해온 중앙일보가 올해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상을 시상하지 않음으로써 그간 논란을 빚어온 미당문학상 폐지가 기정사실화했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또 다른 대표적 친일문학상으로 꼽히는 조선일보사의 동인문학상을 비판하는 세미나와 집회를 잇따라 열면서 폐지 압박을 이어갔다.

■ 국립문학관은 은평으로 2016년 8월 제정된 문학진흥법에 그 근거가 마련된 국립한국문학관은 진통 끝에 10월 말 서울 은평구 기자촌공원 부지에 들어서는 것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국립문학관 부지가 결정되면서 설립추진위는 설계와 운영을 위한 용역에 들어가는 한편, 문학관에 전시·보관될 책과 원고 등 자료를 확보하는 작업에 나서는 등 국립문학관 건립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 퀴어소설 본격 개화 2016년 10월에 출간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올해 11월 말로 100만부를 넘어섰다. 2007년 김훈 소설 <칼의 노래>와 2009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한국 소설이 100만부 판매를 기록한 것은 9년 만이다. 올해 조남주는 한국 사회 각계 각층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를 담은 소설집 <그녀 이름은>을 내놓았다. 193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 강주룡의 삶을 그린 박서련 소설 <체공녀 강주룡>, 주목받는 작가 김금희의 첫 장편 <경애의 마음>, 최은영의 두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구병모의 장편 <네 이웃의 식탁>과 소설집 <단 하나의 문장>, 박민정 장편 <미스 플라이트>, 그리고 정세랑의 첫 단편집 <옥상에서 만나요> 등 여성 작가들의 신작들도 주목받았다.

기준영의 장편 <우리가 통과한 밤>과 김봉곤 소설집 <여름, 스피드>, 박상영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등은 한국에서 본격적인 퀴어 문학이 시작됐음을 알게 했다. 윤흥길의 <문신>과 김성동의 <국수> 등 중진 작가들의 묵직한 장편, 그리고 송영의 <나는 왜 니나 그리고르브나의 무덤을 찾아갔나>와 정미경의 <당신의 아주 먼 섬>과 <새벽까지 희미하게> 등 작고한 이들의 유작도 반가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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