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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기사님한테 아양 좀 떨어봐”… ‘젠더갑질’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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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 ‘젠더갑질’ 실태조사 결과 발표

채용부터 임금·승진·업무 등 전과정서 차별

응답자 70% ‘성희롱·성폭력’ 경험

“개인 능력보다 사회구조·제도 탓”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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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가 입사부터 임금, 승진, 업무 수행 등 일하는 전 과정에서 겪는 차별과 성적 괴롭힘을 ‘젠더갑질’로 처음 명명하고 케이티(KT),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 딜라이브, 기아 화성공장, 교육공무직 등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가 18일 발표됐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 공간, 이혜경·박선영 연구자는 ‘젠더갑질 실태조사팀’을 꾸려 지난 9월부터 약 4주간 282명을 대상으로 설문과 집단면접 조사를 진행했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 자회사 ‘홈앤서비스’ 소속 20대 여성 노동자 ㄱ씨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입사에 불이익을 줄까 봐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일부러 빼고 지원했다. ㄱ씨는 취직을 하고도 한동안 화장실에 숨어 젖을 짜내고 말리며 일을 했다. 합격해도 차별은 계속된다. 대부분 내근직인 여성 노동자들은 현장직으로 직군 전환을 희망해도 관리자들이 기회를 주지 않는다. ㄱ씨는 “한번의 기회를 안 준다. (직군 전환 이야기를 하면) ‘너는 살부터 빼야 돼’란 소리를 한다”고 했다.

현장직 기사의 일을 보조하고 있지만, 전문 기술이나 영업 정보 등은 전달되지 않는다. 대신 업무와 무관한 차 접대, 빨래, 청소, 사무실 관리가 이들의 몫이 된다. ㄱ씨는 “아침마다 회의를 하면 저희(여성 노동자)는 빼고 현장기사님들만 (한다). 뭘 공지하는지 모르고, (나중에) 스스로 습득해야 한다”고 했다.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저희는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이거예요. 기사님한테 아양 좀 떨어봐.” ㄱ씨는 “(성희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경우는) 한 사람도 없다. ‘남초’라서 내 일에 그 누구도 공감해줄 수 없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했다.

‘젠더갑질’은 설문 결과로도 드러난다. 실태조사팀이 이들 사업장 소속 여성 노동자 28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46.5%가 입사 당시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중 경험한 성차별에는 “남자 상사나 남성 동료가 반말 등 함부로 대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38.7%로 가장 많았으며 “복장이나 외모, 화장에 대한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31.6%), “회사의 중요한 정보를 못 받은 적이 있다”(29.1%),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는 느낌이다”(27.0%)란 답변이 뒤따랐다. 전체 응답자의 69.9%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한 응답자 가운데 75.6%는 “성희롱·성폭력을 직장에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알려도 소용없거나 불이익, 소문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실태조사팀은 “‘젠더갑질’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 여성에게 행하는 불합리한 차별이 아니라 구조화되고 오래된 관습과 제도 전반에 걸친 성차별을 드러내기 위한 용어”라며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나쁜 일자리, 성별 임금격차, 낮은 승진과 낮은 근속 연수 등은 개인의 능력이나 운명에 따른 것이라기보단 성별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사회구조와 제도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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