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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퀴어한 에디’의 고향은, 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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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TV>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 26회

서로를 감싸며 사는 곳, 우사단 사람들 3부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에디 이야기



우사단은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자리잡은 마을입니다. 옛날에 보광동 산4번지에 기우제와 기설제를 지내던 우사단이 있었고, 마을의 유례가 되었습니다. 근대들어 이태원이 외국인 거리로 자리잡으면서 이태원과 이어진 우사단길에는 이슬람 사원과 할랄 음식점이 들어섰습니다. 우사단이 무슬림을 주축으로 흑인과 백인, 그리고 한국인 등 여러 인종이 뒤섞인 국제 마을로 변화가 생긴 겁니다. 여기에 젊은 예술가들과 상인들이 공예품 가게와 작업실을 내면서 아기자기한 골목길 풍경이 자리잡게 됩니다.

최근 우사단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옛 것과 새 것,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이 뒤섞인 이 공간에도 재개발의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의 한 조각 ’원:피스’팀이 재개발 한 가운데 선 우사단길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3차례 걸쳐 소개합니다. 마지막은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인 에디씨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여자야? 남자야?” …편견으로 가득찬 질문들
“저, 남자예요” …에디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회


“블랙티 한잔 드릴까요?”

서울 우이동 에디의 집에 갔을 때 출근 준비로 바빴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에디는 손님 챙기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에디에겐 사람을 편하게 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취재를 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어리숙한 피디의 질문에도 정성껏 대답해줬습니다. 편안한 기운이 에디의 집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디가 집밖의 세상과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 전환을 결심하고 몸이 변화하는 동안 에디는 세상의 숱한 편견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버스를 탔는데 할아버지가 제 손을 잡고 큰소리로 묻더라고요...여자야? 남자야?”

남자에게 남자라 묻지 않고 여자에게 여자라고 묻지 않는데, 에디에겐 유독 이 질문이 징그럽게 따라다녔습니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당황한 에디는 결국 자신을 부정하는 대답으로 그곳을 피했습니다.

“저... 남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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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이었던 에디, 자신을 받아준 교회로 돌아가다

씩씩한 에디는 세상의 편견에 숨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줄 곳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열린문공동체교회(ODMCC)라는 기도모임이었습니다. 열린문공동체교회는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교회 중 하나입니다. 특정한 장소 없이 우사단의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기도회를 열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녔던 에디는 자신을 부정한 교회를 떠나 자신을 받아주는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퀴어축제에 갔는데 ODMCC가 부스를 차려놓고 홍보 활동을 하더라고요. 우리들(성소수자들)을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 곳이라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에디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 곳에서 에디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에디일 뿐이었고, ‘유쾌한 에디’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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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에디는 그렇게 세상과 마주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교회가 있고, 친구가 생기자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드러내는 것은 세상의 편견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ODMCC에서) 인권단체를 위한 모금 행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퀴어축제 공연을 준비하기도 하고, 그렇게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사회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날 미워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요.”

에디는 우사단에 녹아들었습니다. 우사단으로 집을 옮기고,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지금은 우사단을 떠났지만, 아직도 우사단 친구들은 에디씨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너무 오랜만이다!”

“언니 왜 그러세요?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요?”

에디의 쑥스러운 인사에 오랜만에 만난 우사단 친구는 짓궂은 장난으로 받아쳤습니다. 우사단의 일상은 에디를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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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의 죽음에 에디는 성소수자 활동가의 길로
“헛된 희망이라도 네가 첫 번째가 되면 되잖아!”라는 외침


그렇다고 우사단 생활이 만냥 행복했을까요? 에디와 다른 선택을 한 친구는 결국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18살인가? 19살인가? 게이였던 친구는 부모님과 다니던 교회가 세상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세상의 전부들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하니 견딜 수가 없었겠죠. 스스로 세상을 떠났어요.”

성소수자들에게 죽음은 너무도 가까이 있다고 에디는 말합니다. 에디가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활동가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입니다. 직접 청소년 성소수자의 죽음을 마주하고 에디는 더 이상 죽음을 지켜 보고만 있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에디는 지금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겐 꿈의 대상이 되는 롤모델이 없어요. 한 아이는 트렌스젠더 교사가 되고 싶어해요. 트렌스젠더 교사라니? 상상이 가세요? 저희는 그 아이들에게 헛된 희망이라도 말하고 있어요. 네가 첫 번째가 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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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도 당당히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

누군가를 세상과 마주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우사단에서 에디를 지켜준 수많은 인연들처럼 에디는 이제 누군가를 지켜주는 일을 합니다. 성소수자도 세상에서 어울려 당당히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 에디가 “세상에 먼저 몸을 던져 얻은 결과”입니다.

“우사단에서 만난 인연들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이제 어느 곳에서든 말도 안 되는 차별을 당하면 달려와서 함께 싸워주고 커피한잔 마시며 힘을 줄 친구들이 많이 생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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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가 주는 커피 마시러 와”

에디씨의 꿈은 무엇일까요? 우사단에서 다른 성소수자 친구들뿐만 아니라 이주민이나 가난한 청년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1충은 까페, 2층에는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모여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에디가 주는 커피 마시러 와’라고 말 하면서 살고 싶어요.”

유쾌한 에디가 세상에 먼저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안녕 난 에디야, 우사단에 살고 있는 성수소자로 불려. 그래도 나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기획·연출: 조성욱 피디 chopd@hani.co.kr, 사진: 김성광, 종합편집: 문석진, 내레이션 김포그니, 장소협찬: 가능세계

⊙ 시사다큐 원:피스 더보기 ☞ https://goo.gl/jBPK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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