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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미 망명설 위안무 중국 전 대변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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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 때는 한 명의 사망자 없다고 주장

아시아투데이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한때 미 망명설에 휩싸인 바 있던 위안무(袁木) 전 국무원 연구실 주임이 지난 13일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왕이(網易)를 비롯한 매체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위안 전 주임은 최근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나 노환까지 겹쳐 결국 소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향년 91세로 슬하에는 1남1녀를 뒀다. 장례는 23일 열릴 예정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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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별세한 위안무 전 중국 국무원 대변인. 반미 대변인으로 유명했다./제공=왕이.



위안무는 장쑤(江蘇)성 싱화(興化) 출신으로 신중국 건국 직전인 1948년 상하이(上海)의 푸단(復旦)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재학 기간에는 공산당 지하당 활동을 열심히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덕분에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1950년에 입당을 할 수 있었다. 이후 언론계에 투신, 지방지 기자를 전전하다 베이징의 관영 신화(新華)통신 본사에서 일할 기회를 잡고 수 년 동안 근무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국무원 판공실로 이동, 20여 년 가까이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8년에는 국무원 연구실 주임 겸 정부 대변인에 임명됐다. 기자에서 부장(장관)급 관료가 되는 화려한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때의 승진이 영광 뿐인 상처가 됐다. 1년 후 학생,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인 6.4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하면서 그 자신이 정부를 대신해 총대를 메고 왜곡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톈안먼 사태’의 희생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당시 그의 발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거센 분노를 샀다. 그 역시 지지 않았다. 계속 미국을 비난하면서 정부의 주장을 일관되게 견지한 것. 이로 인해 그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반미 대변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됐다.

그는 그러나 진정한 반미주의자는 아닌 듯했다. 이는 톈안먼 사태 이후 그의 딸이 미국 비자를 신청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여기에 2016년 미국에서 골프를 치고 있는 사진이 유포된 사실까지 더하면 오히려 친미주의자라고 해도 좋지 않았나 보인다. 당시 그의 미 망명설이 불거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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