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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겉도는 '취성패'ⓛ]‘못 먹으면 바보'...허위지원에 중소기업은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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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수천억원 청년일자리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취업 알선’을 돕고자 도입한 취업성공패키지가 현장에선 ‘공돈 벌이’ 용도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적잖다. 고용 절벽 위에 선 청년들의 정책 만족감도 높지 않다. 설상가상 올해 청년취업률도 제자리 수준. 취업성공패키지의 허점을 들여다보고 바람직한 취업지원 정책의 방향을 모색해본다.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최근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A(25·남)씨는 2개월째 고용노동부의 ‘청년구직수당’을 받고 있다. 합격통보를 받은 건 지난 11월 7일. 구직수당을 주는 ‘취업성공패키지’를 신청한 건 한 달 앞선 10월쯤이다. A씨는 “아직 연수기간이라 3차까지 받는 게 목표”라며 “자격만 되면 쉽게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안 받으면 손해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취업을 위해 신청했다기보다는 그냥 용돈이다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B(28·남)씨는 같이 공부하던 스터디원 소개로 지난해 10월 취업성공패키지를 신청했다. 상담비용으로 노트북을 샀다는 스터디원의 말에 귀가 띄었다. B씨는 “상담사도 본인은 기업체 중심이라 언론계는 잘 모른다고 하더라”며 “지원금만 받아가라는 식이라 의무적으로 상담 일수만 채웠다”고 증언했다.

두 사람이 각각 받거나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최대 105만원이다. 자격만 되면 손쉽게 신청할 수 있다 보니 청년들 사이에선 ‘못 먹으면 손해’라는 인식도 파다하다. 사상 최대 청년취업난에 정부가 꺼내 든 일자리 대책 카드가 실효성보단 ‘눈먼 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취업성공’ 패키지? 현장에선 ‘용돈’ 패키지

취업성공패키지(이하 취성패)는 고용노동부의 대표적인 청년 취업지원 사업이다. 취업상담(1단계)부터 구직 훈련(2단계), 취업 알선(3단계)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취업에 이르는 전 과정을 도와 구직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돕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원자들이 총 3단계로 나눠진 각 과정을 이수할 때마다 참여수당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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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는 1·2단계에만 지원하던 수당을 지난해 7월 22일부터 3단계 참여자에게까지 확대했다. 1단계 상담에서 직업심리검사를 마치면 15만원, 2단계 직업훈련 참여자엔 훈련비 등 최대 40만원을 지급한다. 여기에 3단계, 청년구직촉진수당을 신설해 월 2회 이상 구직활동 증명서를 제출하는 참여자들에게 매월 30만원씩 최대 3개월 동안 지급한다.

취성패는 미취업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층 저소득자도 참여 가능하지만 3단계에서 지급하는 구직활동수당은 만 34세 이하의 청년에게만 해당된다. 청년들은 취업 의지만 증명하면 수개월 동안 진행하는 2단계 직업훈련 없이도 1단계·3단계 상담으로 총 105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고용난에 청년 취업을 돕겠다는 취지지만 현장에선 취업 도움용보단 '용돈'으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담사에게 전문적인 취업 컨설팅을 기대할 수 없고 정부가 알선하는 일자리는 질 낮은 일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올해 초 프로그램을 수료한 나모(26·여)씨는 “상담사 전문성이 부족해 취업에 도움이 거의 안됐다”면서도 “조금 귀찮은 절차를 거치더라도 돈을 준다고 해서 끝까지 했었다”고 말했다.

박화경(27·여)씨는 “실적 때문인지 상담사가 나를 어디든 취직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며 “매일 하는 말이 눈을 낮추라거나 조건이 터무니없는 취직자리를 소개해 기분이 상했다”고 했다. 박씨는 “돈 말고는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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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6호선 마포구청역에 붙은 취업성공패키지 홍보 포스터. zunii@newspim.com 2018.12.04 [사진=김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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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증명’용 허위지원에... 중소기업들 "선량한 업체·구직자 피해 본다"

취성패가 허점을 보이는 사이 수당만 빼먹는 ‘나이롱 지원자’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당장 구직의사가 없거나 프로그램 지원 취지와 다른 국가고시 준비생 등을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현금으로 지급하다 보니 참여자들이 수당을 실제 시험응시료나 면접 등 구직 비용으로 사용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A씨는 “주변에서도 실제로 원하는 회사가 아니라 그냥 돈을 받기 위해 이력서를 대충 집어넣는다고들 한다”며 “이력서 넣은 회사에서 연락이 와도 면접을 거절하고 돈만 챙기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력서를 보낸 메일로 ‘구직 증명’만 하면 다음 진행 단계는 보고할 의무가 없다.

이에 피해보는 건 고용노동부 취업알선 사이트 워크넷에 공고를 낸 중소기업들이다. 실제로 워크넷 구인공고 게시판에서는 “수당을 위한 허위지원은 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사항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3일 한 소규모 업체는 토목 관련 구인 글을 올리며 “최근 워크넷 이메일 입사지원의 편리함을 이용한 허위 구직활동 사례로 선량한 구인업체 및 구직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업체가 언급한 ‘허위 구직활동’ 예시는 △본인 경력 및 희망직종에 맞지 않는 업체 지원 △입사지원 후 연락두절 △타당한 이유 없이 거절 등이다.

발효제품 생산부 사원을 모집하는 한 중소기업은 “실업급여 수급을 위한 형식적 입사지원의 경우 급여 담당자에게 통보 예정이니 각별히 유의해 달라”는 경고 문구를 강조해 올리기도 했다.

취성패 참가자들에 따르면 담당 상담사들이 알선하는 취업 자리는 중소기업 쪽에 치우져 있다. 이력서 지원도 워크넷에 등록한 중소기업으로 시도해볼 것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한 참가자는 "상담사가 상담 때마다 직원 10명 있는 회사에 면접을 보라며 경험만 해보라고 하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중소기업에 구직자들을 연결시키려다 취지와 달리 영세 업체들이 나일롱 지원자들의 타깃이 됐다. 매년 청년취업성공패키지 참가자 수만 20만명을 웃돈다. 일부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규모가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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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청년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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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식 청년 일자리 예산... 효과 없이 퍼주나

해마다 취성패에 투입되는 예산은 수천억 원대다. 2009년 1백여억 원으로 시작해 2015년 3204억 원, 2016년 3493억 원, 2017년 4410억 원으로 증가세를 기록했다. 올해 예산도 전년 대비 619억원 오른 5029억 원이었다. 11월 말까지 사용한 액수는 4705억여 원으로 예산 집행률도 높은 편이다.

쏟아 붓는 예산에도 일자리 상황판은 여전히 차갑다.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3.2%였다. 지표는 올해 내내 42~43%대를 오가고 있다.

3년 전인 2015년 청년층 고용률이 41.2%였던 점을 고려하면 고용 지표가 나아졌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고용 시장의 회복을 논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달 청년의 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청년층 고용보조지표(확장실업률)는 21.6%를 기록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며 국회는 2019년도 취성패 예산을 크게 삭감했다. 올해 예산보다 1319억 원 적은 3710억 원이 편성됐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4122억 원보다도 412억 원 낮은 금액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미취업 청년 대상 일자리 예산은 늘어났다. 취성패 예산이 뚝 떨어진 건 3단계에서 지급하던 청년구직활동수당이 별도의 사업으로 신설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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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는 1582억원 규모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신설해 내년 예산에 포함했다. 취성패 예산과 합치면 5292억 원으로 올해보다 200억 원 이상 높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은 졸업한 지 2년 이내의 중위소득 120% 이하 청년 8만 명을 대상으로 내년 3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 동안 총 300만원의 구직활동비를 지원한다. 취업 상담과 구직활동 증명 과정을 거치는 등 취성패 3단계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청년구직수당을 희망하는 청년들은 앞으로 취성패가 아닌 구직활동지원금 사업에 참여하면 된다”며 “구직활동 증빙 방법이나 허위지원 방지책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zunii@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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