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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사법농단 법관들 ‘품위 손상’으로 징계한 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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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살 도려내는 아픔”

13명 중 8명만 솜방망이 징계

‘의무 위반’ 아닌 ‘품위 손상’

정직 6개월~견책 처분 그쳐

법원 내부 “탄핵 국회청원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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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자체 조사에서 재판 개입, 판사 뒷조사, 특정 법관모임 와해 시도 등이 드러나 김명수 대법원장이 징계 청구한 법관 13명 중 5명이 징계를 피했다. 징계가 인정된 나머지 대부분도 ‘직무상 의무 위반’이 아닌 ‘품위손상’을 이유로 징계 최고 수위에 한참 못 미치는 정직 6개월~견책 처분에 그쳤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기소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소환이 임박하는 등 사법농단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6개월이나 걸린 징계 심의에서 법원이 내놓은 결론은 ‘솜방망이’였다. 이에 반발한 일부 법관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청원권을 통해 ‘법관탄핵 국회청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법관 징계위원회는 지난 17일 최종 심의를 통해 징계가 청구된 13명 중 3명 정직, 4명 감봉, 1명 견책, 2명 불문, 3명 무혐의 의결을 했다고 18일 밝혔다.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소송 등에 개입한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품위손상을 이유로 정직 6개월을, 현역 국회의원의 재판 상황을 대신 챙겨주고 재판 개입 및 판사 뒷조사 문건 작성을 방조한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품위손상 및 직무상 의무 위반으로 정직 6개월 처분을 받았다.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재판장을 맡아 그 결론을 사전에 알린 방창현 대전지법 부장판사도 직무상 의무 위반으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

‘사법부의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 협력 사례’ 문건을 만든 정다주 울산지법 부장판사와 ‘양승태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법관모임을 뒷조사한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품위손상으로 감봉 5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역시 동료 판사 뒷조사에 나선 김민수 창원지법 부장판사도 품위손상으로 감봉 4개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설치의 청와대 동의를 얻으려 재판을 흥정 대상으로 삼은 문건을 만든 시진국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도 같은 이유로 감봉 3개월 징계가 결정됐다.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소송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관련 문건 등을 작성한 문성호 서울남부지법 판사 역시 품위손상을 이유로 서면 훈계로 그치는 견책 처분을 받았다.

‘재판 독립’을 위해 법관 신분은 헌법으로 보장된다. 이 때문에 법관징계법에는 다른 공무원과 달리 파면이나 해임이 아예 없다. 가장 강력한 징계가 정직 1년인데, 사상 초유 사법농단 사태 관련자 징계를 심의하면서도 고작 그 절반인 정직 6개월에 그쳤다. 1년까지 가능한 감봉도 5개월을 넘지 못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때 김동진 부장판사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무죄 1심 판결을 비판한 글을 올렸을 뿐인데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고 재임용 탈락에까지 몰렸던 것과 대비된다. 한 판사는 “과거 다른 징계 수위에 비춰보더라도 과연 재발 방지를 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고 혹평했다.

솜방망이 징계조차 피해간 이들이 있다. 판사 뒷조사 문건 작성이 확인된 김연학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노재호 서울고법 판사에 대해 법관징계위는 품위손상이 인정되지만 정도가 약해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양승태 사법정책에 비판적이던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방안을 논의한 법원행정처 회의 참석자인 심준보·홍승면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회의에 참석했지만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에 일부 법관들은 “다른 판사들이 회의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후에 모른 척하고 비밀로 하면 문제가 안 된다는 면죄부”라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을 막으려 했던 김봉선 전주지법 부장판사도 무혐의 결정됐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대법원 3차 조사 결과를 두고 법원 내부 의견수렴을 거친 뒤, 지난 6월13일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징계 절차에 회부했다”며 ‘엄정한 조처’를 약속했다. 다른 판사는 “지난해부터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법원 안팎에서 주장했지만, 이번 징계로 보여준 대법원은 대답은 사실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고위 법관이 대부분인 징계위는 법원의 자정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국민은 사법농단 관련자들에게 재판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대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법관징계위원 7명 중 3명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나머지 4명은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명했다. 법원행정처 쪽은 “애초 검찰 수사 결과를 보고 징계 수위를 결정하려고 했지만, 내년 1월 징계위원 구성이 바뀌기 때문에 그 전에 마무리한 것”이라고 했다.

일선 법관들 사이에선 “법원 스스로 탄핵을 자초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사찰 대상이었던 차성안 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에 “정직 1년이 단 한명도 없다. 탄핵 국회청원(헌법 제26조 제1항)을 해볼 생각”이라며 판사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다른 판사는 “일부러 법관탄핵을 위해 이 정도 수준의 징계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허탈해했다. 대법원장이 징계 청구한 법관 중 절반 가까이 징계를 면한 것 자체가 대법원장의 현재 위상을 보여준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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