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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정부 뒤늦게 보완 나선 근로시간 단축…딜레마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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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6개월, 산업현장 혼란에 계도기간 연장키로

산업계 '기업경쟁력 저하' 우려, 숙련근로자 '줄어든 임금'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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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처벌 유예기간이 연장되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새로운 경제정책은 경제·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필요한 경우 보완조치도 함께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 시행 이후 약 6개월간 법정 근로시간 단축으로 어려움을 겪은 기업들은 한시적 처벌유예로 한숨 돌리게 됐다. 당장 내년부터 범법자로 내몰릴 위기를 넘긴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고민을 던지는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처벌 유예기간이 종료된 이후부터는 근로시간 위반 시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에 놓인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 위반시 사업주를 징역(2년 이하)·벌금형(2000만원 이하)에 처하도록 한다. 형사 처벌규정은 해외에선 찾기 어려운 강한 규제다.

근로자도 마냥 환영할 일만은 아니다.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임금이 줄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임금이 줄지 않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했다. 그러나 여력이 되지 않는 중견·중소기업들은 근로시간 관리 외에 숙련 직원들의 임금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시간을 벌기 위해 300인 미만으로 직원 수를 줄이는 편법마저 횡행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5인 이상 제조업체를 조사한 결과, 현 임금 수준이 월 296만원인 제조업체는 근로시간 단축 후 월 258만원으로 38만원(13.1%) 내려간다. 근로자의 임금보전 요구가 불가피하고, 임금 문제가 근로시간 단축 제도 안착의 관건 중 하나로 꼽힌다.

정호석 한국능률협회컨설팅 공인노무사는 "인사업무 경력이 20년이 넘는 분들도 근로시간 단축 제도에 대해 헷갈려 한다"며 "세심하게 제도를 설계해야 하고 임금보전과 같이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부분이 있어 임금체계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대기업의 경우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해야 하는 연구개발(R&D) 현장의 어려움도 크다. 제조 현장은 대부분 교대근무로 돌아가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기업들의 설명이다. 대체인력 투입이 어려운 R&D 분야는 다르다. 해외 기업들과 협업하는 일이 잦은 반도체나 스마트폰 개발 부서는 시차를 맞추기 위해 아침 일찍이나 밤늦게 파트너 기업들과 콘퍼런스콜(화상회의)을 하는 일이 잦다. 출시 시점이 정해진 스마트폰과 반도체, 게임 등 ICT 업종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유다.

제도 시행 5개월을 넘기고 계도기간 종료를 보름 여 앞둔 지금도 기업 현장에선 근로시간이 카운트되지 않도록 회사 밖에서 만나 미팅을 하고 자료를 만드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좋지만 집중 업무가 필요한 개발 업무에는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가기간산업인 석유화학과 조선업도 혼란이 크다. 2~3개월간의 집중근로가 필요한 업무 특성으로 1주 52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석유화학은 정기보수 또는 비계획 가동정지시 대규모 인력의 집중 근로가 이뤄진다. 정기보수에 착수하면 2~3개월간 집중근로가 이뤄져 주52시간을 지키기가 어렵다.

숙련 근로자들이 투입되는 선박 시운전도 업무 특성상 집중근로가 필요한 분야다. 안벽 시운전은 건조된 선박을 안벽에 계류해 직종별로 동시에 성능검사를 실시한다. 통상 6~8개월이 소요된다. 계약서에 지정된 해역으로 건조된 선박을 이동시켜 해상에서 실제 운항조건으로 검사를 수행하는 해상 시운전도 수개월이 소요된다. 상선(商船)은 3주, 군함·잠수함 등 특수선은 6개월~1년이 걸린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근로시간 위반 사례도 부지기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도입한 대·중견기업 317개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기업 4곳 중 1곳은 초과근로가 여전하다고 답했다.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제도로는 '탄력근로제'가 꼽혔다. 경제계가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1년 확대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A제조업체 관계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최소 6개월은 돼야 생산대응이 가능한데, 현재는 최대 3개월밖에 안된다"며 "노조 반발로 도입도 어렵고, 짧은 단위기간이나 까다로운 운영방식 등으로 인해 도입해도 실익이 적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산업 현장의 혼란을 감안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 수준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제계에선 국제 기준에 맞게 최대 1년으로 확대해야 법정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 경쟁력 저하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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