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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흥미로운 북한의 신소청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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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북한-57] 북한 공민은 헌법에 의해 누구나 신소(伸訴)와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북한 신소제도의 뿌리는 조선시대 신문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소에 대해 북한은 '신소는 자기의 권리와 이익에 대한 침해를 미리 막거나 침해된 권리와 이익을 회복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행위이며, 청원은 기관, 기업소, 단체와 개별적 일군의 사업을 개선시키기 위해 의견을 제기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신소청원법은 1998년 처음 제정돼 201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개정됐지만, 신소제도는 그 전부터 있었다. 중앙당은 물론 각급 당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신소과가 있다. 신소과는 일 처리 과정에서 과학성, 객관성, 공명정대성, 비밀성을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취지도 좋고 신소를 통해 억울함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신소를 했다가 역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자가 당하는 불이익이나 그들이 받는 차가운 시선과도 닮아 있다.

북한에서는 신소를 당한 사람과 신소를 제기한 사람 중에 지위가 높거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유리한 결과를 만든다. 살인을 저질러 놓고도 총련의 고위 간부 자녀라서 버젓이 활개 치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신소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해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사람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범한 주민들은 신소 하나를 제기하고자 해도 백 번, 천 번 곱씹어 생각해 본 후 최악의 경우에 마지막 수단으로 이를 시도한다. 그렇지만 신소 대상이 권력자라면 신소가 해결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신소의 피해자가 마냥 일반 주민에게만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광범위한 대중의 평가가 나쁘면 간부들도 처벌받을 수 있고, 줄을 잘 잡아 중앙당에 직접 신소를 하게 되면 비교적 공평하게 처리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소는 역시 조심해야 한다. 신소를 하거나 그 횟수가 많아지면 오히려 불평 불만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당적 원칙과 충성심으로 당에 충언했다가 오히려 죽음에 이른 일도 있다. 이것으로 유명한 것이 현 북한 외무상 리용호의 모친 사건이다.

매일경제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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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리용호는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한 말에 대해 '개 짖는 소리'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동남아 4개국을 순방한 리용호 외무상의 행보가 우리 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리용호가 베트남에 들렀을 때는 '북한이 베트남식 경제모델을 따르려나 보다'라는 목소리가 나왔고, 그가 몽골에 도착하자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울란바토르만 한 곳도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처럼 행보 하나하나에 세간의 관심을 받는 북한의 외무상으로 명실상부한 권력자처럼 보이는 리용호도 신소 때문에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경험했다. 리용호는 리명재의 2남2녀 중 장남이다. 그의 아버지 리명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당중앙위원회 선동선동부에서 사업을 시작하던 때부터 함께했던 사람이다. 김 위원장의 서기실장으로 일한 리명재는 김위원장의 측근 중의 최측근이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됐다.

1980년대 후계자의 지위를 공고히 다진 김정일은 최측근들과 자주 파티를 벌였는데,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한 리명재가 부인에게 변명하는 과정에서 파티의 실체를 발설해 버렸다. 늦어짐과 술 취함이 반복되던 어느 날 리명재의 부인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이발기로 흉측하게 망가진 리명재의 머리였다. 파티 놀이에서 지게 된 리명재가 벌칙으로 이 같은 꼴을 당하자 소위 당적 원칙과 충성심이 투철했던 부인은 참을 수가 없었다.

리명재의 부인은 김일성 주석에게 직접 신소 편지를 썼고, 편지에서 '김정일 조직비서(당시 김정일의 직책) 동무의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후계자로서 제대로 된 품성을 가질 수 있도록 바로 잡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 편지는 김일성 주석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중간에서 편지를 가로챈 김정일은 리명재를 불러 '나와 아내 중에 누구를 택하겠느냐'고 다그쳤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리명재는 아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리명재의 아내는 김정일에 의해 총살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

이후 리명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혁명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사업을 책임지고 진행해 지속적인 신임을 얻었는데, 김 위원장의 책임서기, 서기실장 등을 역임하면서 고용희의 생활도 직접 챙겼다. 김 위원장은 말년에도 최측근과 술 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이때 리용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분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잦은 파티로 인한 학습효과 때문인지 리용호의 주량은 양주 2병으로 꽤 센 편으로 알려졌다.

리용호는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로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부드러운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북한 정권의 권력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북한에서는 김씨 일가 외에 제2의 권력자나 제3의 권력자가 존재할 수 없다. 체제와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이용당할 수 있고, 희생당할 수 있을 뿐이다.

[장혜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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