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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53] 빵집 벽에 걸린 프레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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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년이 뿔피리를 분다. 갓 구운 빵이 나왔다는 신호다. 아니나 다를까 소매를 걷어붙인 건장한 제빵사가 오븐에서 막 익은 빵을 긴 나무주걱에 얹어 꺼내오고, 그의 아내는 동글동글한 빵들을 조심스레 진열대에 올려놓는다. 벽에는 프레첼이 걸려 있다. 프레첼은 팔기도 할뿐더러 이 집의 간판이기도 하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팔을 형상화한 빵, 프레첼은 유럽 전역에서 제빵사 길드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조선일보

얀 스테인, 라이덴의 제빵사 부부, 1658년, 패널에 유채, 37.7 ㎝ × 31.5 ㎝,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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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스테인(Jan Steen·1626~1679)은 네덜란드 라이덴 출신의 대표적인 풍속화가다. 그림의 주인공들은 라이덴의 제빵사 부부 아렌트 우스트베르트와 카타리안 카이저스베르트. 스테인은 갓 결혼한 이웃집 제빵사를 위해 부부의 초상화를 그렸던 것이다. 뿔피리를 부는 소년은 당시 일곱 살이던 스테인의 아들이다.

우리에게 밥이 중한 만큼 유럽인에게는 빵이 소중하다. 따라서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빵의 가격과 수급의 모든 과정을 정부가 통제했다. 길드에 소속되어 투명하게 세금을 내는 제빵사만이 정당하게 수입된 재료를 써서 빵을 만들어 팔 수 있었을 뿐 일반인이 집에 오븐을 들이고 빵을 굽는 건 불법이었다. 제빵이란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는 고귀한 직업이자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황금 직종이었던 것이다.

동글동글한 빵 중에 벽에 기대 둔 커다란 다이아몬드 모양의 빵이 눈에 띈다. 주로 크리스마스 때에 먹는 이 빵은 흰 밀가루만 써서 만든 고급 빵이어서 곡물 수급이 어려울 때면 아예 생산 자체가 금지되는 품목이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흰 빵처럼 풍요로운 휴일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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