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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2019 경제정책] 文정부 성장전략, 소득에서 투자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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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소득’ 사라지고 ‘투자’가 전면 나서

정부가 17일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의 가장 큰 특징은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그 빈 자리를 기업 투자가 채웠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함께 잘 사는 혁신적 포용 국가’라는 비전의 하위 구성 요소로 언급되는 수준이고 정책 방향엔 거론되지 않았다.

대신 경제활력 제고, 경제 체질 개선 및 구조개혁, 경제·사회의 포용성 강화, 미래 대비 투자 및 준비라는 4대 정책 방향 안에는 투자와 규제 개혁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16대 과제 가운데 ‘빅 트러스트(Big Trust·신뢰)’로 묶인 4개 과제를 제외한 12개 과제가 모두 투자 활성화와 연관됐다.

지난해 말 발표된 ‘2018년 경제정책 방향’만 해도 "2017년은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원년, 2018년은 ‘사람 중심 경제의 본격 구현’을 통해 국민 삶의 가시적 변화를 창출"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일자리 및 소득 여건 개선이 정책 최우선 과제로 언급됐고, 공정경제도 주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 이러한 내용은 원론적인 언급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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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와 2019년도 경제정책 기본 방향. 2018년도(왼쪽)는 일자리와 소득을 앞세운 반면 2019년도(오른쪽)는 투자 제고 방안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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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정부가 민간 부문 어려움 해소한다는 신호 주려는 것"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을 계기로 정부 경제정책 기조가 바뀐 것 아니냐는 시각에 "큰 기조에서 정책 일관성은 유지되고 있다"고 답한다. 또 "그 동안 경제 패러다임 전환 노력이 어느 정도 안착된 상황에서 2019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 ‘실행안’으로 4개 축과 16개 핵심 과제에 중점을 둔 것"(고형권 전 기재부 1차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재부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 내놓은 방안들은 대부분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내용들이다. 2019년 정책과제의 맨 첫 번째 항목에 ‘투자활력 제고’가 올라간 것은 기조 변화 가능성을 가늠하게 해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규제 병목을 해소해 기업들의 투자 결정을 유도하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예산 투입은 물론, 민간 투자사업도 적극적으로 활성화하겠다는 게 정부의 정책 의지인 셈이다. 민자사업의 경우 현 여권(與圈)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비판할 때 단골 메뉴로 삼았던 내용이 반복됐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기본법을 내년 1분기 중 통과시키겠다면서,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원격의료를 시범 사업 수준에서 시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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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1일 취임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은 경제활력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2019년 경제정책방향도 기업들의 투자를 대폭 지원해 경제활력을 높인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홍 부총리가 13일 충남 아산의 자동차 부품업체 서진캠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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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현대자동차(005380)서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설립 지원 방안이 2개월 만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월 24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안건으로 올렸다 보류됐는데, 2달만에 채 다시 거론되며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여줬다. 당시 회의에는 김수현 당시 사회수석(현 정책실장)이 참석해 김 전 부총리를 지원했지만,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완강한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GBC 인허가를 내년 1월 중 해결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도 제시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의 주안점이 기업 투자 활성화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홍 부총리는 "경제팀이 민간의 의견을 듣고, 어려움을 앞장서 해소하려고 한다는 시그널(신호)를 주려는 게 이번 경제정책방향의 핵심 목표"라며 "16개 핵심 과제는 향후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도 계속 챙겨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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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19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16대 과제를 선정해 발표했다./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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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타개책 성격도…산업별 지원책 대거 포함

올해 경제정책방향이 기업 투자를 전면에 내건 것은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고용 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자리 사정이 좋지 않고 상위 20%를 제외한 나머지 80% 계층의 소득 개선도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불황이 깊어지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성장세가 약화되는 가운데 제조업 업황 불확실성, 심리 위축 등으로 고용창출력이 높은 투자가 부진해지고 기업·시장의 활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성장률 하락의 주된 원인이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부진이라는 것도 정부가 '투자'를 전면에 내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경제성장률에 대한 성장기여도(계절조정 기준)를 보면 설비투자는 지난 2분기 -0.5%포인트(p), 3분기 -0.4%p였고, 건설투자도 2분기 -0.3%p, 3분기 -1.1%p 였다. 투자 부진을 타개않으면 경제 상황이 나아질 수 없는 걸 보여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투자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은 바람직한 변화"라면서 "경기가 내년 상반기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구상한 계획들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자동차, 조선 등 어려움을 겪는 산업을 지원하고 서비스산업 등에 투자 유인책을 제시할 계획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자금난을 겪는 부품업체가 회사채를 원활하게 발행할 수 있도록 신용을 보강해주고 전기차, 수소차에 대한 취득세 감면 혜택을 압축천연가스(CNG) 차량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조선업은 140척 규모로 LNG 연료추진선을 공공 발주해 지원하고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산업에는 차세대 기술개발 투자 및 생산시설 조성 사업이 실시된다. 구조조정 용도의 기업활력법 일몰 기한은 2019년 8월에서 2024년 8월로 5년 늦추기로 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규제 완화에도 나선다. 정부는 숙박·차량 등의 공유경제와 원격 의료 관련 규제를 풀겠다고 발표했다. 카카오페이, 페이코 등 간편결제 서비스를 해외에서도 쓸 수 있도록 하고 크라우딩펀딩 형태의 P2P(개인 간 거래) 대출을 별도 금융업으로 법제화한다. 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론의 일환으로 추진된 정책들은 일제히 ‘속도조절’에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방향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져야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현욱 KDI(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새로운 경제팀이 투자 등 그동안 정부 정책에서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 같다"면서도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투자를 늘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핵심규제 등의 과제들에서 한발짝이라도 나아간다는 생각으로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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